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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 장편소설] 김소월 전기-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_에필로그

2023-10-10     이정

에필로그

1

1934년

평안북도 구성군 서산면 남시

정식의 아내가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침 해가 창호지를 바른 창문에 넘실거렸다. 정식은 이불을 덮지 않고 두루마기를 입은 채 벽 쪽에 잠든 듯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요즘은 술 먹고 늦게 들어와 아무렇게나 쓰러져 자곤 했다. 평소처럼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머리맡에 떨어져 있는 손바닥만 한 흰 종이가 눈에 띄었다. 오래전부터 남편이 지니고 다니던 생아편이 떠올랐다. 순사보에게 두드려맞은 이후 진통제로 복용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하지만 다 낫고도 궂은날엔 뼈가 수시다면서 지나칠 정도로 챙겨 다녔는데, 협박성 시위를 겸해 집착하는 정도로만 여겼었다. 그런 비정상적인 태도가 남편에게는 정상이라고 할 정도로 비정상이 일상화되다시피 해서 빼앗지 않았다. 고분고분 내줄 사람도 아니었다. 아내는 정식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입에서 검은 약물이 흘러나와 입꼬리에서 말라붙었다. 갑자기 가슴속에서 거센 풍랑이 일었다. 다가가 정식을 흔들어 깨웠다. 반응이 없었다. 흔들 때마다 몸 전체가 나무토막처럼 둔탁하게 움직였다. 코에 손바닥을 대 보았다. 미심쩍어 귀도 대 보았다. 숨을 쉰다는 느낌이 전혀 전해지지 않았다. 저고리를 헤쳤다. 가슴에 손을 넣었다. 어느새 싸늘했다.

아내는 정식의 가슴에 머리를 묻었다. 그리고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꼈다. 정호가 깨어나 영문도 모르는 채 따라 울었다. 그 소리에 구석에서 자던 준호도 깨어나 눈을 비볐다. 옆 방에서 구생이 데리고 자던 딸들도 방안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모두 사태를 짐작했는지 함께 울었다. 울음소리가 새벽 고샅을 통해 마을로, 들로 번져나갔다.

2

1934년

경성

중앙방송국 사무실로 막 출근한 김억이 창문의 커튼을 걷었다. 남산 소나무 숲이 보이지 않았다. 하얀 성에가 유리창을 꽉 채웠다. 난로에 장작을 넣고 불을 지폈다. 실내에 온기가 어느 정도 퍼지자 책상 앞에 앉았다. 수위실에서 방금 집어 온 신문(12월 26일치)을 펼쳤다. 신풍속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크리스마스 후일담 기사가 지면을 반 넘게 차지했다. 여기저기 훑어보다가 한 지점에 눈길을 멈추었다.

그제 시인 김소월 씨 돌연 별세.

평안북도 구성군 서산면 자택에서.

김억은 김소월이란 시인이 누구인가 곰곰이 생각했다. 소월은 오직 한 사람뿐이라는 사실을 아는 까닭에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소월의 시 한 편이 추모의 형식을 빌려 부음 밑에 실려 있었다.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을

철없는 내 귀로 들었노라,

만수산을 나서서

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도

오늘날 뵈올 수 있었으면.

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고락에 겨운 입술로는

같은 말도 조금 더 영리하게

말하게도 지금은 되었건만.

오히려 세상모르고 살았으면.

‘돌아서면 무심타’는 말이

그 무슨 뜻인 줄을 알았으랴.

제석산 붙는 불은 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의

무덤엣 풀이라도 태웠으면.

-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전문

“헛! 헛!”

김억이 외마디 소리를 내질렀다.

급히 전화기가 있는 총무과로 걸음을 옮겼다.

“동아일보사 학예부 좀 대주시오.”

수화기에서 목소리가 새어 나오자 다급히 물었다.

“소월 말이오. 기사가 맛소?”

김억은 전화기를 든 채 멍하니 서 있었다.

3

1935년

해가 종각 너머로 사라졌다. 바짝바짝 붙여 지은 건물들 사이로 난 골목길에 기다렸다는 듯 매서운 바람이 몰아쳤다. 가까운 곳에 있는 목조 건물의 양철 처마가 삐그덕삐그덕 몸부림을 쳤다. 관철동 백합원을 향해서 가던 김억은 마침 술집에서 나오는 소설가 김동인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발기하자 해서 단체로 종삼(종로 3가 술집거리)에 가서 그걸 세워 보자는 줄 알았지요.”

김동인이 김억을 보자 농담을 건넸다.

“취했군.”

“그걸 못 세우면 눈물발이라도 세우자고 정지용, 박팔양과 함께 한잔했습니다.”

시인 정지용과 박팔양이 어깨동무를 하고서 김동인이 나온 술집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소월 아내가 임신 중(넷째 아들 洛鎬)이라는군요. 아아아!”

“미래가 총망한 젊은 동무가 관습과 노인들의 고집에 무너졌습니다. 도향(나빈)이처럼.”

정지용과 박팔양이 괴로워 못 견디겠다는 표정을 짓고서 김억에게 인사를 했다.

김억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는 말들을 구태여 꺼내서 괴로움을 가중시키고 싶지 않았다. 네 사람은 함께 백합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백화원 현관에는 ‘고 김소월 추도회장’이라고 쓴 현판이 바람에 맞서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방명록에 서명을 하는 중이었다. 김기림, 김동환, 이광수, 이은상, 유도순, 박종화 등이 보였다. 김동인, 박팔양, 정지용, 김억과 함께 추도회 발기인에 이름을 올린 문학인들이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강당에는 문학인뿐 아니라 적잖은 언론인과 독자들이 입장해 있었다. 수인사를 나누었지만, 누구도 정식의 사인(死因)을 화제 삼지 않았다. 부음이 실린 이후 충분히 까닭을 캐고 귀를 세운 결과였다. 이내 식이 시작되었다.

얼마 되지 않아 김억도 단상에 올라섰다.

“한창 젊은 몸으로 발휘할 수 있는 모든 재능을 보여 줄 수 있었거늘, 그만 검은 운명의 손이 아닌 밤중에 돌개바람 모양으로 우리의 기대 많은 시인 김소월 군을 무참히 꺾고 말았으니……. 고작 33년을 살다 가려고…….”

이곳저곳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김억 또한 끝내 추도사를 마치지 못하고 울었다. 대중의 흐느낌 속에서 김동인, 이병기, 모윤숙이 추도사를 이었다.

이 풍진(風塵)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좌중에서 누군가 일어나 비탄조로 노래를 불렀다. 한창 유행하는 ‘희망가’였다.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 같도다

몇몇이 따라 불렀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모인 이들이 모두 합창했다.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담소화락(談笑和樂)에 엄벙덤벙 주색잡기(酒色雜技)에 침몰하랴

세상만사를 잊었으면 희망이 족할까

마침내 합창은 노래인지 울음인지 알 수 없는 소리로 변해 강당을 가득 메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