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 카지노 사이트

[2024 현경 신춘문예 장편소설 대상 – 민주의 방] 1회 모두의 방

한열음 작가

2024-04-03     차종혁 기자

2024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 장편소설 대상 수상작 '민주의 방(한열음 작가)'을 매주 연재합니다. 단행본은 국내 대형서점 및 인터넷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삽화=조민성 화백]

 

[2024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 장편소설 대상 수상작]  민주의 방

 

01회. 모두의 방

 

작은오빠랑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녹슨 못을 줍기로 했다. 언니랑 큰오빠는 학교에 갔다. 작은오빠랑 노는 것은 별로 재미가 없지만 할 수 없었다.

“오빠, 쩌어기 옥수수, 옥수수.”

길바닥에 멀쩡한 옥수수가 떨어져 있었다.

“오메, 별로 드럽지도 않은디, 누가 흘리고는 그냥 가버렸나비네. 우리가 먹으까나?”

“응, 응. 먹자.”

오빠나 나나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해 배가 고팠다. 오빠는 옥수수를 주워 옷으로 먼지를 대충 털어냈다. 내가 보기엔 오빠가 입고 있는 옷이 더 더러워 보였다. 여섯 살 오빠가 옥수수를 반으로 자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오빠가 나부터 먹으라고 옥수수를 내밀었다. 나는 옥수수를 몇 알 이빨로 뜯어보았다.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지만 너무 배가 고파 숨을 참고 먹었다. 꼭꼭 씹었더니 단물이 나왔다.

“자.”

내가 오빠도 먹으라고 오빠한테 먹다 만 옥수수를 건넸다. 오빠도 옥수수를 뜯어 먹었다.

학교에 간 언니랑 큰오빠가 돌아왔다. 시장에 간 엄마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아홉 살 우리 언니가 부엌에 있는 부대에서 밀가루를 꺼내 반죽을 했다. 저녁엔 밀가루 풀빵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언니 옆에 쪼그려 앉아 밀가루 반죽하는 것을 구경하고 싶었지만 배가 너무 아파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힘센 거인이 배를 뒤틀어 짜는 것 같아 눈물이 나왔다. 땀이 나서 머리카락이 얼굴에 달라붙었다. 나는 참지 못하고 방바닥에 드러누웠다. 울다가 누운 채로 바지에 똥을 쌌다. 변소까지 달려갈 힘이 없었다. 방안에 똥 냄새가 진동했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울기로 했다.

“야야, 민주 왜 근다냐, 낮에 뭐 멕인 거여?”

부엌에 있던 언니가 놀라서 뛰어 들어왔다. 지켜보고 있던 작은 오빠가 옆에서 혼날까봐 안절부절못했다. 배는 계속 뒤틀렸다. 머리가 아파지더니 급기야 천장이 빙빙 돌았다.

눈을 떴을 때는 엄마가 손으로 내 배를 문지르고 있었다. 다행히 난 똥 싼 바지를 입고 있지는 않았다. 누가 갈아입혀 줬나 보았다.

“아이고, 우리 강아지, 배가 고파가꼬 옥수수 주서 먹었담서? 담부턴 그런 거 막 주서 먹고 그럼 안디야. 큰일 나. 벌레들이 붙어 있다가 뱃속이로 들으가서 막 창시기를 갉아 먹는 당게.”

“벌레 없어.”

“벌레들이 하도 찍깐혀서 안 보이는 것이여. 엄마가 배 문질러 줬응게 금방 나슬 거여. 얼른 나스믄 엄마가 우리 강아지 먹고 싶은 거 다 사 줄랑게. 얼릉 나스야지.”

“짜장면!”

“그려, 짜장면 사주야지, 우리 강아지.”

기분이 좋아진 나는 엄마 배에 손을 가져다 댔다.

“벌레 없어. 애기 있어.”

엄마 배 속에는 곧 내 동생이 될 아기가 자라고 있었다. 그래서 엄마 배는 점점 뚱뚱해졌다.

“그려, 엄마 배는 애기가 사는 방이여. 너도 이 방이서 살다가 나온 거여. 언니도, 오빠도 싹 다 이 방이서 살다가 나왔응게.”

엄마 배 속은 좁아서 아기가 자라면 더 살 수가 없어 태어나야만 하는 거라고 언니가 알려줬다. 나도 언니도 모두 그렇게 세상에 나와 엄마 배보다 더 큰 방에 같이 사는 거라고.

 장날이었다. 엄마가 나와 작은오빠를 시장에 있는 짜장면집에 데려갔다. 날씨가 너무 추워 엄마가 나를 안아주길 바랐지만 엄마는 배가 너무 뚱뚱해져서 힘들다고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드디어 짜장면을 먹는 날이니까. 사실, 지난번 짜장면을 사주겠다는 약속을 하고는 계절이 바뀌도록 엄마는 약속을 지키지 않다가 이제야 지키려는 것이었다.

집을 온통 짜장면으로 만들었는지 짜장면 가게 입구에서부터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기다리는 것은 시장에 간 엄마를 기다리는 것보다 힘들었다.

드디어 짜장면이 나왔다. 한 그릇이었다. 엄마가 짜장면을 먹기 좋게 비벼 주었다. 윤기가 좔좔 흐르는 것이 빨리 먹고 싶어 미칠 지경이었다. 엄마가 잘 비벼진 짜장면을 오빠와 내 앞으로 내밀었다. 오빠는 젓가락으로 면을 집어 허겁지겁 먹었다. 자꾸만 젓가락 사이로 면이 흘러내렸다. 나는 엄마가 짧게 자른 면을 숟가락으로 떠서 천천히 먹여줬다. 그래서 나보다 오빠가 더 많이 먹는 것 같았다. 나도 혼자서 먹을 수 있는데. 오빠랑 내가 까만 양념까지 싹싹 긁어 깨끗이 그릇을 비우는 동안 엄마는 계속 주전자에서 물만 따라 마셨다.

나는 커서 돈을 아주아주 많이 벌 생각이었다. 그러면 짜장면을 매일 사 먹을 수 있을 테니 그때는 오빠와도 안 나눠 먹고 나 혼자 한 그릇을 다 먹을 거다.

방 안에는 비린내가 가득했다. 검게 굳어가는 핏자국 위로 갓 빠져나온 새빨간 피가 느리게 흘렀다. 전구가 내뿜는 노오란 빛이 사람들 얼굴로 골고루 내려앉았다. 앉은뱅이책상 위에서 나는 한 장면이라도 놓칠세라 눈을 크게 뜨고 어수선한 풍경을 노려보았다. 힘줄이 도드라진 이마, 토끼처럼 붉은 눈. 가닥가닥 찢겨 꼬챙이처럼 내리꽂는 비명. 엄마는 어느 때보다 무서웠다. 다섯 살이나 되었는데도 나는 울음을 참지 못했다. 누군가 우는 나를 들어 올려 문밖의 웅성거리는 무리에 떠넘겼다. 선선한 밤공기 속 꽃냄새에 비린내가 씻겼다. 나는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많은 별이 마당으로 쏟아질 듯 반짝였다.

문간방을 제외한 모든 방의 불은 꺼져 있었다. 집에는 방이 아주 많았다. 하지만 우리 가족이 지내는 방은 딱 하나였다. 나머지 방들은 모두 박쥐랑 귀신들 차지였다. 우리 가족은 이제 여섯 명에서 행운의 숫자, 칠이 될 거라고 언니가 알려줬다. 행운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동네 아줌마 말대로 엄마 배 속을 빠져나오느라 난리 블루스를 추고 있는 동생이 우리 집에 행운을 가져올 거라는 걸 보니 좋은 말인가 보았다.

엄마의 비명이 멎자 우렁찬 아기 울음소리가 이어졌다. 어찌나 시끄럽게 우는지 나는 동네가 깡그리 부서질 것만 같아 걱정됐다.

“긍게 시방이, 80년 5월 13일 새벽 영 시 23분이구만!”

동네 아저씨가 동생이 태어난 시간을 알렸고 옆에서 아버지가 아주 작은 노트에 그걸 받아 적었다.

동생은 밤의 한가운데를 뚫고 나와서 우리 가족이 되었다. 진한 피비린내의 기억과 함께 나는 언니가 되었다. 언니가 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 겪어본 사람은 절대 모를 것이다. 그 무렵에는 언니만 힘든 게 아니었다. 동생이 태어나고 얼마 안 지나 동네에는 나쁜 소문이 떠돌았다. 왕준지 광준지 하는 곳에서 큰 난리가 났다고 어른들이 수군거렸다. 그쪽에서 학교에 다니던 동네 오빠가 하늘에 올라가 별이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자세히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엿듣기 위해 다가가면 ‘애들은 저리가’라고만 했다. 우리 가족이 사는 방에도 난리가 났기 때문에 나는 그 일을 더 자세히 알아볼 겨를이 없었다. 아기는 하루 종일 울고도 지치지도 않는지 밤마다 또 울어대는 통에 매번 내 잠을 깨웠다. 그런데도 울보 동생은 밉지 않았다. 나는 수시로 동생 얼굴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그러면 이내 기분이 좋아졌다. 아무래도 내가 언니라서 그런 것 같았다.

사람들은 우리 집을 ‘재실집’이라고 불렀다. 아빠 직장인 꽃밭 옆의 ‘천막집’이 무너지고 우리 가족은 이곳, 산정리로 이사 왔다. 나는 아침마다 꽃밭에 갈 수 없어 슬펐다. 아버지가 일하는 꽃밭에는 온갖 꽃들이 모여 사는 비닐하우스가 있었다. 그 안에 들어서면 축축하고 진한 꽃 냄새가 강아지처럼 오두방정을 떨며 한꺼번에 달려들고는 했다. 나는 거기서 카라 꽃을 처음 보았고, 장미나 국화, 백합의 이름을 알았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듣는 빗소리는 최고였다. 수많은 비의 요정이 북을 치며 끝없이 행진하는 것 같았다. 그럴 때는 가만히 눈을 감고 요정의 북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이제 북소리가 듣고 싶어도 비닐하우스에 갈 수 없게 되었다. 아쉬운 대로 눈을 감고 기억을 떠올려 보려고 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요정은 이미 저 멀리 달아나 버린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천막집보다 재실집이 더 좋은 건 분명했다. 일단 커다란 대문부터 마음에 쏙 들었다. 내 키를 훌쩍 넘는 담벼락이 넓은 집을 빙 둘러 있어 대궐이 따로 없었다. 넓은 마당을 지나 반듯한 계단에 오르면 기다란 마루와 여러 개의 방이 있는 본체가 보기 좋았다. 줄 맞춰 올린 기와지붕은 또 얼마나 멋스러운지. 산정리 마을을 통틀어 가장 근사한 집의 문간방에 사는 대가로 부모님은 재실과 묘지를 관리하고 제사 준비를 맡았다.

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집 왼쪽으로 흐르는 경사를 타고 반질반질한 비석을 앞세운 무덤이 세 개 있었다. 산에 있는 다른 무덤들보다 훨씬 컸다. 맨 위에 있는 무덤 뒤로 대나무와 소나무가 편을 갈라 빽빽했는데, 낮에도 어두컴컴한 것이 귀신들의 놀이터로 안성맞춤이었다.

마을 뒷산이 여러 번 색깔 옷을 갈아입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꽃밭으로 출근했고 엄마는 삼일장에 나가 병아리를 팔았다. 모두 나가고 집에 동생 진주랑 둘만 남게 되면 나는 본체 빈방에 몰래 들어가 낮잠을 자거나 무덤가에 가 잔디밭에서 미끄럼을 탔다. 친해진 동네 아이들과 재실 탐험을 시작했다. 뭐니 뭐니 해도 동네 최고 인기는 우리 집에 사는 박쥐였다. 박쥐를 보고 나면 본체 뒤편의 거대한 아궁이에 들어가 깜둥이가 될 때까지 장난치다가 집에 돌아온 아버지에게 매질을 당했다. 억울할 건 없었다. 나는 매번 ‘맞을 짓’을 했으니까. 엄마는 아니었다. 내가 보기에 잘못한 게 없는데도 아버지는 엄마를 허구한 날 때렸다. 그 덕에 엄마 얼굴엔 사시사철 멍이 도라지꽃처럼 피었다. 언젠가 보았던 도라지꽃은 정말 예뻤지만 보라색으로 변한 엄마의 얼굴은 하나도 안 예뻤다.

엄마 얼굴에서 못생긴 멍꽃이 청보랏빛을 잃어갈 때쯤 나는 일곱 살이 되었다. 세 살짜리 동생, 진주 밑으로 식구가 하나 또 늘었다.

‘나비’. 

동네에서 늙은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고 엄마가 한 마리 얻어왔다. 나비는 재실집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쥐를 찾아내는 데 도사였다. 나는 수시로 귀여운 나비를 쫓아다녔다. 나비는 어찌나 날랜지 이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엄마 만나러 갔나? 상관없었다. 저녁에 언니가 불을 지피는 아궁이 앞에 가면 틀림없이 부뚜막 위에서 그르렁그르렁 소리를 내며 졸고 있을 테니까. 저녁에 부엌에 들어가니 역시나 나비가 부뚜막 위에 배를 깔고 누워있었다.

“야는 뜨겁지도 않은 게벼.”

나비의 등을 여러 번 쓸어내렸다. 그르렁그르렁 소리에 맞춰 움직이는 나비의 보드라운 등을 만지면 기분이 몽글몽글해졌다.

식구들이 빠져나간 재실집 마당으로 해가 긴 발을 뻗었다. 재실집 본채 마루 끝에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 ‘오도독 오독 찹찹’하는 소리를 들었다. 졸음이 저만치 달아났다. 차가운 고드름을 맨살에 올려놓고 목덜미부터 엉덩이까지 천천히 끌어 내리는 것 같았다. 침을 한번 꼴깍 삼키고는 맨발로 토방에 내려가 마루 밑을 보았다.

어두컴컴한 마루 밑에서 나비가 철퍼덕 주저앉아 무언가를 씹어 먹는 중이었다. 나비 옆에서 조그마한 것들이 꼼지락거렸다. 빛이 모자라 그게 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눈을 비비고 다시 보니 눈앞이 조금씩 밝아졌다. 아직 몸에 짙은 색 털이 돋지 않아 연회색 몸뚱이에 구불구불 주름이 가 있는 새끼 쥐였다. 눈도 뜨지 않은 그것들은 분홍색이 감도는 발을 꼬물거렸다. 입안에 든 것을 다 먹었는지 나비는 꿈틀대는 가여운 쥐를 또 한 마리 덥석 물었다. 나는 나비의 입으로 사라지기 전 새끼 쥐의 분홍색 다리가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나비의 눈도.

저녁에 부뚜막 위에 앉아 그르렁거리는 나비의 입가엔 피 한 방울 묻어 있지 않았다. 귀여운 새끼 쥐를 잡아먹은 나비는 배가 부른지 세상 편하게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나비의 등도 쓰다듬지 않고 아궁이 앞에 앉아 언니 손에 들린 부지깽이를 신경질적으로 흔들었다.

“하이고, 야가 왜 그린댜, 불 꺼지겄다.”

“언니야, 왜 나비는 쥐를 잡어 먹는디야?”

“아 그럼 괭이가 쥐를 잡어 먹지, 머슬 잡어 먹겄냐?”

“기양 풀 먹으믄 안 되는 거여? 쥐도 불쌍허잖여, 아까 낮이 나비가 새끼 쥐를 몽땅 다 잡아먹었단 말여. 새끼 쥐가 아퍼서 다리를 이르케, 어 이르케, 막 떠는디도 암시랑토 않게 막, 깨물어서 먹어 버맀당게.”

나는 팔을 들어 올리고 파르르 떠는 모양새를 해서 언니에게 보여주었다.

“아, 그럼 너는 괭이가 쥐를 하나도 못 잡어서 우리 집에 쥐가 막 득실득실 혔으믄 좋겄냐? 병균도 여그저그 다 옮기고 댕김서?”

“그것은 아닌디, 그리도 애기 쥐는 불쌍허단 말이여……, 그믄 아빠 쥐나 처먹든가!”

나는 벌떡 일어나 잠든 나비의 등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화들짝 놀란 나비는 몸을 날려 마당으로 내뺐다.

“나비가 그 귀여운 쥐들을 아작아작 씹어 먹는 것을 봤드라믄 언니도 그르케 나비 편만 들지는 못 혔을 거고만!”

“얼레? 야가 왜 울고 지랄이여?”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