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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현경 신춘문예 장편소설 대상 – 민주의 방] 2회 능바우 창꼬방으로

한열음 작가

2024-04-19     성현 기자

2024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 장편소설 대상 수상작 '민주의 방(한열음 작가)'을 매주 연재합니다. 단행본은 국내 대형서점 및 인터넷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삽화=조민성 화백]

[2024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 장편소설 대상 수상작] 민주의 방

02회. 능바우 창꼬방으로

재실집 앞으로 펼쳐진 들판이 누렇게 변했다. 올벼를 심은 논은 날 더울 때 추수가 끝나 진작에 텅 비었다. 논두렁을 차지하고 자란 콩대도 벼를 따라 똥색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너도 인자 나비 안 좋아허잖여, 새끼 쥐 잡어먹는다고, 아 그람서 왜 나비는 데꼬 갈라고 그리싼데?”

“그려도 나비를 넘 줘버리는 것은 싫단 말이여, 우리랑 같이 살었응게 이사가드라도 나비도 같이 딜꼬 가얄 거 아녀? 나비가 없으믄 이사 가는 집이서 쥐는 누가 잡는디야? 긍께 딜꼬 가야지, 안 기어?”

나비를 이웃에 줘버리고 이사 갈 거라는 가족들 앞에서 나는 나비를 끌어안고 눈물 바람을 했다. 아무리 나비가 새끼 쥐를 잡아먹고 난 후 내가 등을 쓸어주지 않았다고 해도 나비와 영영 헤어지는 것은 상상조차 안 해봤다.

“거기 가서 또 괭이 한 마리 얻어 주께, 운전기사 아저씨가 동물은 차에 못 태운다잖여.”

엄마가 내 품에서 나비를 빼내려고 했다. 새로 나비를 얻어준다 해도 그 나비가 이 나비일 리 없었다. 나는 나비를 안은 손에 힘을 더했다. 나비가 아픈지 ‘니야아홍’ 하고 울었다. 짐을 나르던 아버지가 다가왔다.

“이녀러 가시내가 뭔 말이 그르케 많어. 뚜드러맞기 전이 빨리 못 노냐! 너도 여그다 혼자 확 내삐리고 가벌랑게.”

아버지가 나를 때릴 것처럼 손을 치켜드는 바람에 깜짝 놀라 나비를 놓치고 말았다. 나비가 제힘으로 도망친 건지 맞기 싫은 내가 먼저 손의 힘을 빼버린 건지 알 수 없었다. 마당을 어슬렁거리던 나비는 기어이 뒷집 아줌마 손에 붙들려 재실집을 떠났다. 새끼 쥐를 잡아먹었더라도 좀 더 쓰다듬어 줄걸 그랬다.

문간방 짐들이 용달차에 실렸다. 아버지가 동생을 데리고 운전기사 아저씨 옆에 타고 나머지 가족들은 짐칸에 올랐다. 능바우로 간다고 했다.

“능바우?”

“그려, 능바우가 니가 태어난 고향여, 고향.”

꼬불탕 흙길을 따라 트럭은 자꾸만 산속 깊숙이 들어갔다. 주변에 보이는 거라곤 계단처럼 층이 다른 조각난 논들과 어떻게 저기서 안 넘어지고 똑바로 앉아 일할 수 있을까 싶게 경사진 밭, 들을 에워싼 야트막한 산과 그 위 동글동글 파란 하늘뿐. 사람은 하나 없이 도깨비나 동물만 살 것 같은 풍경이었다. 커다란 당산나무를 뒤로하고 시커먼 방죽도 하나 지났다. 조금 더 올라가자 드문드문 집이 나타났다.

마을 입구에서 왼쪽으로 꺾인 길 안쪽의 집 한 채가 흙 마당을 펼치고 트럭을 기다리고 있었다. 담이나 대문은 없었다. 어디까지가 마당이고 어디부터가 길인지 구분되지 않아 들도 산도 다 한집 같았다. 나는 집을 꼼꼼하게 살폈다. 시멘트로 다진 토방이 두 단으로 네모반듯했고, 그 끝에 단을 낮춰 설치된 수도가 정갈했다. 토방 위 자리한 마루 입구에는 여닫이문이 여러 개였다. 빼꼼히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마루에 반들반들 윤이 났다. 보기 드문 신식 집이었다.

“하따, 집 겁나게 크고 좋네잉.”

작은오빠는 집이 맘에 드는지 토방에 서서 두리번거리다가 수돗가로 달려가 바가지로 물을 떠 벌컥벌컥 마셨다.

“야야, 그 집이 아니고 쩌어짝이 우리가 살 집이여.”

엄마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우리 남매의 시선이 일제히 엄마의 손끝을 따라갔다. 토방에서 ㄱ자로 연결된 곳에는 나뭇단이 천장까지 높게 쌓였고, 그 옆으로 외양간에 소 한 마리가 커다란 눈을 끔뻑이면서 무언가를 계속 씹었다. 외양간 옆 좁은 공간에 농기구들이 나란히 걸렸고, 건물이 끝나는 곳에 방이라고 짐작할 만한 문이 하나 보였다. 문 앞에서 부엌을 고치던 아저씨들이 아버지와 반갑게 인사했다.

“하이고, 김서방 왔는가? 이거시 민 년 만이여?”

“아이고 그랑게요, 욕들 보고 기싰구만요잉.”

아버지도 아저씨들과 함께 부엌을 고치기 시작했다. 원래는 헛간 옆에 붙어 있는 창고인데 주인이 먼 친척인 우리에게 공짜로 내준 것이었다. 아궁이와 구들은 이미 아저씨들이 만들어 놓았고 부엌살림을 놓을 수 있도록 마당 쪽으로 슬레이트 지붕을 잇고 부엌 공간을 넓히는 중이었다.

“바닥 돌멩이를 쪼매 더 파내야 겄는디, 아야 괭이 좀 가지와 봐라잉?”

한 아저씨가 아무나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아저씨 앞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긍게 괭이는, 트럭 아저씨가 동물 태우믄 안 된다고 혀서 넘 줘버리고 왔는디요. 쥐도 겁나게 잘 잡어서 나도 디리꼬 오고 싶었는디.”

잊고 있던 나비 생각에 나는 또 울적해졌다. 아저씨들이 입을 크게 벌리고 웃었다. 작은오빠가 차에서 곡괭이를 가져오는 걸 보고서야 아저씨가 말한 괭이가 나비가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

아저씨들은 우리가 살 집을 ‘창꼬방’이라고 불렀다. 짐을 다 정리하고 온 식구가 모두 큰집에 가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마을의 집들은 두세 채씩 모여 있다가 또 한참을 걸어가면 두어 채가 나타나는 식이었다. 우리 집처럼 대부분 담이나 대문이 없어 집안이 훤히 다 들여다보였다. 능바우는 윗마을과 아랫마을로 구분되는데 윗마을에 집이 열 채, 아랫마을엔 띄엄띄엄 한 채씩 총 네 집이 있다고 했다. 큰 집은 아랫마을에서도 가장 끝이었다.

할아버지는 빳빳하게 풀 먹인 한복 차림이었고, 머리에 비녀를 꽂은 할머니는 허리가 잔뜩 굽어 있었다. 우리는 큰집 안방에 동그란 상을 두 개 펴고 밥을 먹었다. 엄마랑 큰엄마가 아궁이 잔불로 직접 구웠다는 까만 김이 고소하니 맛났다. 김만 있으면 배가 터지든 말든 밥을 하염없이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할머니가 밥상에 김을 올려놓기 바쁘게 우리 남매는 손을 뻗어 김을 낚아챘다. 진주도 짭짤한 김 한 장을 손에 들고 쪽쪽 빨아먹었다. 지켜보던 할머니가 언니랑 내 손등을 때리더니 김을 오빠와 사촌 오빠 쪽으로 몰았다.

“가시내들이 어디서 먹을 걸 그리 탐허고 지랄이여, 지랄이? 느자구없게.”

그러고는 김치 종지를 언니랑 내 앞으로 당겼다. 나는 할머니가 어른들 상에 김을 챙겨주는 틈을 타 오빠들 앞에 있는 김을 훔쳐 먹었지만 언니는 밥 한 그릇을 다 먹는 동안 매운 김치만 집어 먹었다. 엄마는 큰엄마랑 부엌에서 계속 김을 굽는지 보이지 않다가 가끔 쟁반에 김을 받쳐 들고 방문을 열었다.

‘이렇게 할머니 눈치를 보며 김을 먹을 게 아니라 부엌에 가 엄마한테 자르지도 않은 큰 김을 얻어먹어야지.’

나는 할머니 눈치를 보다 슬며시 숟가락을 상에 내려놓고 방을 나갔다. 부엌에서는 엄마랑 큰엄마가 김치가 든 양푼을 사이에 두고 흙바닥에 쪼그려 앉아 손으로 김치를 찢어가며 밥을 먹고 있었다. 김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식사가 끝나가는 밥 상위에도 김은 없었다.

저녁상을 물린 할아버지는 나를 무릎 위에 앉히더니 양푼에서 내 주먹만 한 열매를 하나 집어 들었다.

“아나, 요거 묵어 봐라잉. 이게 무화과라는 것이여.”

나는 처음 보는 과일을 받아 한입 베어 물었다. 물컹한 느낌은 이상했지만 달큼하니 맛은 좋았다.

“너는 꼬추가 납작허냐, 아니믄 손가락 맨치로 질쭉허게 생깄냐?”

“나는 여잔게 꼬추가 없는디요. 긍게 그냥 납작허게 생깄지요. 할아버지는 겁나게 나이를 많이 먹었는디 여태 그것도 몰론데요잉?”

어른들이 다 같이 웃었다.

“이녀러 가시내가 할아버지한테 말버릇이 그게 머시다냐? 으른이 멀 물어보믄 공손허게 대답만 허믄 되는 것이지. 하여간 꼬추 안 달고 나온 것들은 다 저 지랄이랑게.”

할머니가 눈을 뾰족하게 뜨고 나를 째려봤다. 나는 눈을 내리깔고 중얼거렸다.

“치이, 할머니도 꼬추 없으믄서.”

아버지는 본채 뒤 대나무밭에서 잔가지를 여러 개 꺾었다. 가지들의 키가 엇비슷해지도록 다듬어 다발을 만들었다.

“너도 인자 학교를 가얀 게 숫자를 배우얄 것이여. 이 한 다발이 열 개씩이여.”

아버지는 대나무 가지를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기며 숫자 세는 걸 알려줬다. 아버지가 바빠서 글자까지는 배우지 못했다. 아버지는 능바우에서 첫 농사를 짓기 위해 겨울부터 바빴다.

능바우에서는 나와 정록이 경민이까지 셋이 함께 1학년으로 입학했다. 학교까지 가는 산길은 너무 좁아서 길게 한 줄로 서서 걸었다. 흙바닥은 얼어서 한껏 부풀어 있었다. 바작바작 땅 얼음 부서지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나는 일부러 언 땅만 골라 밟았다. 기분이 들떠 줄줄 흐른 콧물이 얼어붙는 줄도 몰랐다. 면 소재지가 있는 학교까지는 십오 리 길이랬다. 십오 리가 얼마나 먼 거리인지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멀다고 했다. 여러 겹 겹쳐진 산골짜기 사이로 난 좁은 길이 논밭 가운데로 이어지다 결국 면 소재지에 닿았다. 개울 건너편에 학교가 보였다. 나는 언니를 따라 징검다리를 껑충껑충 뛰어 건넜다.

운동장에 1학년 신입생들이 남자와 여자로 나뉘어 줄을 섰다. 그 주변으로 아줌마무리가 소란스러웠다.

“하이고, 저것 봐, 유치원 댕긴 애들은 확실히 달르고만.”

“누가 아니랴. 쟈들 봐. 인사도 지대로 못허고 꿔다 논 보릿자루 마냥 멀뚱멀뚱 서 있잖여.”

우리 부모님은 왜 나를 유치원에 보내주지 않아 이런 창피를 당하게 하는지 분했다. 스물까지 숫자도 셀 줄 안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유치원 나온 아이들은 더 많이 셀 수 있을지도 몰라 꾹 참았다. 학교에는 병설 유치원 한 반과 1학년부터 5학년까지 한 반씩 있었다. 6학년만 학생 수가 많아 두 반이었다. 나와 작은오빠는 1반, 언니는 2반이 되었다.

1학년 1반 선생님은 우리를 남자와 여자 한 명씩 키순서대로 짝을 지어 앉혔다. 짝없는 남학생이 꽤 되었다. 어쩔 수 없이 키 큰 남자애들끼리 짝이 되었다. 내 짝꿍이 된 진수는 온종일 콧물을 흘렸다. 콧물이 윗입술까지 내려오면 옷소매로 쓱 닦았다. 진수의 옷소매는 항상 반질반질 윤이 났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선 그리기와 숫자 쓰기, ㄱ, ㄴ, ㄷ, ㅏ, ㅑ, ㅓ, ㅕ 등 글자를 알려주었다. 유치원을 나온 애들이 그렇지 않은 우리에게 글자도 모른다며 놀렸다.

내일이 오늘로 바뀔 때마다 조금씩 더 따뜻해졌다. 아침에 교실에 들어가니 반장인 현수가 선생님 책상에 앉아 빵과 우유를 먹고 있었다. 현수네 엄마는 종종 학교로 전화를 걸어 현수가 아침을 안 먹고 갔다며 선생님한테 빵과 우유를 사 먹이라고 부탁했다. 우리는 자습하면서 슬쩍슬쩍 빵 먹는 현수를 부러운 눈으로 훔쳐보았다. 두 장의 도톰한 카스텔라 사이에 크림까지 듬뿍 들어간 저 빵은 얼마나 맛있을까. 토요일이 되면 현수네 엄마는 빨간 치마를 예쁘게 차려입고 와서는 빵값과 함께 곱게 싼 보따리를 선생님 손에 들려주곤 했다. 보따리 속에 있는 건 주로 김치통이었다. 나도 혹시나 해서 아침을 먹지 않고 학교에 가보았지만 엄마는 선생님에게 연락하지도, 보따리를 들고 학교로 찾아오지도 않았다. 전화도, 빨간 치마도 없어서 그런 것 같았다. 김치는 엄마가 담은 것이 더 맛있을 텐데, 아쉬웠다. 남의 제사 음식 해주는 게 일이었던 우리 엄마 손맛은 능바우에서도 유명했다.

학교는 어버이날에 있을 학예발표회 준비가 한창이었다. 우리 1학년 1반은 선생님의 풍금 반주에 맞춰 노래를 하기로 했다. 그리고 또 하나, 첫인사를 1학년이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선생님은 나한테 첫인사를 연습시켰다. 나는 선생님이 알려주는 대로 인사말을 외우고 또 외웠다. 다 외우고 나자 이번에는 함께할 손동작을 알려주었다.

내가 무대에서 첫인사를 한다고 하자 부모님뿐만 아니라 동네 어른들까지 모두 농사일을 하루 쉬고 학교에 오기로 했다. 어버이날 아침 일찍 총연습이 있었다. 언니는 나와 오빠를 데리고 다른 애들보다 먼저 등굣길에 나섰다. 총연습이 끝나자 선생님은 나를 위아래로 여러 번 훑어보다가 교실로 눈을 돌렸다.

“연정아, 잠깐만 나와볼래?”

연정이는 목부터 가슴까지 복슬복슬 주름 장식이 달린 하얀 블라우스와 노란색 치마를 입고 있었다. 선생님은 나와 연정이를 발표회가 있을 병설 유치원 교실 무대 뒤로 데리고 갔다.

“연정아, 선생님이 미안한데, 잠깐 민주랑 옷 좀 바꿔 입자.”

나는 언니한테 물려 입어 색이 바랜 붉은 티셔츠 차림이었다. 엄마가 새로 빨아서 아침에 입혀주긴 했지만 아무래도 선생님 맘에는 안 들었던 모양이었다. 연정이가 내 옷을 보더니 울상이 되었다. 나는 창피했다.

“연정아, 선생님이 미안해. 그런데, 이게 다 우리 반을 위한 일이고, 우리 학교를 위하는 일이야. 그런 일에 연정이가 앞장서는 거니까 얼마나 훌륭한 일이겠어, 그렇지?”

선생님은 연정이의 블라우스와 치마뿐만 아니라 새하얀 타이츠까지 벗겨서 나에게 입혔다. 연정이 옷은 너무나 보드라웠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공주처럼 눈부셨다. 내 옷을 입은 연정이를 보니 학예회가 끝나도 다시 바꿔 입고 싶지 않았다. 나는 공주님 같을 내 모습을 상상하며 사뿐사뿐 걸어 무대로 나갔다.

“아버지이, 어머니이, 이렇게 마아니 와 주셔서 대다안이 감사합니다. 언니들의 춤과 오빠들의 노래까지 마아니 준비했사오니 오늘 하루 마음껏 즐기시고…….”

예쁜 옷을 입어 그랬는지 나는 한 번도 틀리지 않고 첫인사를 끝냈다. 능바우에서 온 어른들이 객석에 앉아 소리를 지르며 박수를 오래오래 쳐 주었다. 내 차례가 끝나고 선생님과 함께 무대 뒤로 가보니 연정이네 엄마가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 그렇지만 선생님이 있어서 그랬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멋쩍게 웃으며 나와 연정이 옷을 다시 바꿔 입혔다. 아줌마는 연정이를 끌다시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마법이 끝나고 공주 옷도 사라졌다.

“우리 민주 오늘 정말 잘했어.”

선생님이 나를 안아주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선생님이, ‘너는 왜 이렇게 다 떨어진 옷을 입고 학교에 온 거야? 그것도 오늘 같은 날?’이라고 말하지 않아서 선생님이 좋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