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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현경 신춘문예 장편소설 대상 – 민주의 방] 3회 트라우마

한열음 작가

2024-05-05     성현 기자

2024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 장편소설 대상 수상작 '민주의 방(한열음 작가)'을 매주 연재합니다. 단행본은 국내 대형서점 및 인터넷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삽화=조민성 화백]

[2024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 장편소설 대상 수상작] 민주의 방

03회. 트라우마

꽃 농사만 짓던 아버지는 농사일로 바빴고 엄마는 다시 시장으로 장사를 나갔다. 이제는 병아리가 아니라 강아지를 도매로 사다가 시장에 나가 판다고 했다. 엄마는 아침마다, 우리가 이사 올 때 지나왔던 큰길을 따라 밤실 마을까지 가 버스를 탔다.

“엄마는 어트케 식구들 아침밥도 다 챙겨주고 허니라고 맨날 시간이 빠듯헌디 아침마다 버스도 안 놓친댜?”

나는 동네 중학생 언니 오빠들보다 한참 뒤에 버스를 타러 출발하는 엄마가 버스를 안 놓치고 탄다는 게 신기했다.

“아, 엄마는 능바우가 알어주는 달리기 선수 아니다냐.”

“달리기 선수는 무슨, 버스 기사 아저씨가 엄마 안타믄 기다려 준 게 글지. 큰집이 오빠들한티 다 들었고만. 맨날 아저씨가 마을회관 화장실 댕겨와서 출발하기 전에 개장시 아줌마 탔냐고 물어본다드만.”

언니가 끼어들었다.

“그리도 동네 오빠들이 엄마가 달리기 선수라고는 허드만.”

“근디, 엄마 나는 울엄마 딸인디 왜 이르케 달리기를 못허까잉?”

학교에서 달리기만 하면 꼴등은 내 차지였다. 능바우 애들은 다 마라톤 선수들인데.

“걱정허지 말어. 인자 1학년인디 머시가 걱정이여. 금방 다 잘허게 될 거여.”

거짓말이었다.

긴 기다림 끝에 나는 2학년이 되었지만, 우리 반 달리기 꼴등은 여전히 나였다. 2학년 교실은 1학년 교실 바로 옆이었다. 1학년 교실 복도를 지나 우리 교실로 갈 때마다, 저렇게 어린아이들이 학교생활을 잘해 나갈 수 있을지 정말 걱정됐다.

중학생이 된 언니는 아침을 먹고 나면 엄마와 함께 밤실 마을에 들어오는 버스를 타기 위해 내달렸고, 저녁 늦게 또 밤실까지 들어오는 두 번째이자 마지막 버스를 타고서 집에 돌아왔다.

찬바람에 꽁꽁 얼었던 산길은 한낮이 되면 햇볕에 녹아 온통 곤죽이었다. 신발에 달라붙은 진흙 덩어리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몸집을 불렸다. 급기야는 내 발이 아버지 장화만큼 커진 꼴이 되었다. 학교 갔다 돌아온 나는 마당에 있는 커다란 돌에 신발의 흙을 쓱쓱 문질러 떼어낸 다음 가방을 벗어 마루에 던졌다.

부엌에서 소쿠리와 칼을 챙겨 들로 나갔다. 들에는 이미 동네 여자애들이 자리를 잡고 나물을 뜯는 중이었다. 능바우 여자애들에게 먹을 수 있는 나물과 못 먹는 풀을 구분하는 일은, 누가 엄마고 아빠인지 구분하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었다. 무침용과 국거리를 구분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엄마가 집에 있는 날엔 주문에 맞춰 국거리와 무침용을 구분해서 뜯어야 했지만, 엄마가 없는 날은 내 마음대로 뜯었다. 나는 냉이를 넣어 향이 진한 된장국도 좋았지만 냉이는 뿌리까지 파내야 해서 너무 귀찮았다. 그래서 요맘때쯤 논두렁에 올라오는 자운영 나물을 잔뜩 뜯었다. 몸집이 제법 풍성한 자운영은 조금만 뜯어도 금방 소쿠리가 가득찼다. 나물을 깨끗이 씻어 끓는 물에 데쳐 놓으면 장에서 돌아온 엄마가 빨간 양념으로 무쳐 상에 올렸다. 아버지는 질기다고 투덜댔지만 나는 자운영을 한참 씹으면 올라오는 달짝지근한 맛이 좋았다. 문제는 미나리였다.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는 미나리. 엄마는 자주 학교에 다녀오는 내게 소쿠리를 내밀면서 찬거리를 주문했다.

“민주야, 오늘은 미나리 쫌 뜯어 오니라잉.”

“하, 또오?”

“아 느그 아부지가 거시기 안 찾냐?”

그런 날은 소쿠리를 들고 미나리가 질겨져 먹을 수 없을 때까지 어디 동굴에라도 들어가 숨어 버리고 싶었다. 얼음은 이미 녹았다고 하지만 미나리가 자라는 개울물은 얼음물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물속에서 올라오는 미나리를 뜯으려면 장갑도 못 꼈다. 내 손가락은 온통 새빨갛게 변하다 굳어버려 칼조차 쥐기 힘들어졌다. 개울에 드문드문 박혀 있는 돌을 밟고 미나리를 뜯다가 균형이라도 잘못 잡는 날에는 물에 빠져 손이고 발이고 꽁꽁 얼기 십상이었다.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아버지는 빨간 양념에 빙초산을 넣어 새콤하게 무친 미나리 반찬을 즐겼다. 나는 분명 소쿠리 하나 가득 뜯어온 거 같은데 뜨거운 물에 넣고 데치면 미나리는 늘 한 줌밖에 안 되었다. 하나하나 물속에서 찾아 뜯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도 모르면서 아버지는 젓가락질 한 번에 그 아까운 것을 뭉텅뭉텅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나도 미나리무침은 좋아했지만 꼭 참고 한두 번, 그것도 한 젓가락에 한 가닥씩만 먹었다.

여자애들이 나물을 뜯는 동안 남자애들은 낫이나 괭이를 들고 산으로 갔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씨앗들이 움트느라 땅을 밀어내 흙이 물렀다. 칡 캐기엔 더없이 좋은 계절이었다. 말라비틀어진 칡넝쿨을 따라 뿌리를 찾아내면 돌이 나와도 포기하지 않고 괭이질을 계속했다. 다른 뿌리들과 엉켜 더 이상 파기 힘들어지면 가져간 낫이나 괭이로 뿌리를 끊어냈다. 칡뿌리는 너무 깊지 않게, 옆으로 길게 뻗는 경우가 많았다. 남자애들은 뿌리를 따라 흙을 파다가 웬만큼 뿌리가 가늘어진다 싶으면 끊어서 어깨에 하나씩 둘러메고 산에서 내려왔다.

큰오빠는 벌써 지난겨울에 돈 벌겠다고 서울로 올라갔고 작은오빠는 허구한 날 구슬치기만 일삼는 통에 우리 집에는 칡 캘 사람이 없었다. 능바우에서 칡 캐기 대장은 누가 뭐래도 옆집 사는 정록이와 정식이 오빠였다. 칡 중에서도 부드럽고 단맛이 좋은 암칡이 으뜸이었는데 정식이 오빠는 그런 암칡을 찾아내는데 도가 텄다. 나는 종종 호미를 들고 정식이 오빠 뒤를 쫓아 산에 올랐다. 정식이 오빠가 덤불에서 칡뿌리를 찾아내고 괭이질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면 괜스레 기분이 좋았다. 두 사람의 괭이질에 암칡 뿌리가 웬만큼 드러나면 옆에서 기다리고 있던 나는 잽싸게 쭈그려 앉아 호미로 칡뿌리 옆을 깔짝댔다.

“오빠, 나도 이거 같이 캤응 게 하나 주야 혀? 알겄지?”

“하따, 니가 머슬 혔다고 맨날 이르케 실헌 알칡만 골라가꼬 달라고 헌다냐?”

정식이 오빠는 내 머리에 꿀밤을 먹이거나 나무라면서도 키는 작지만 통통한 암칡 하나씩을 내 어깨에 들려주었다. 암칡을 하나밖에 못 캔 날에는 반 토막이라도 나눠줬다. 아버지는 내가 얻어 온 암칡을 주인집 작두를 빌려다 잘랐다. 몇 덩이는 작두와 함께 주인집에 주고 남은 칡 덩어리는 식구 수대로 하나씩 잡고 뜯었다. 다섯 살 난 동생은 입술 사이로 갈색 물을 줄줄 흘렸다. 옷에 물을 들여놓는 바람에 엄마에게 혼났지만 늘 더 먹겠다고 손을 내밀었다.

논두렁마다 자운영이 다홍 꽃을 피우고 냉이가 가느다란 꽃대를 올려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리기 시작하면 이번엔 허연 솜털을 단 쑥이 여기저기서 고개를 쳐들었다. 쑥은 미나리와 달리 주로 양지바른 논두렁이나 밭두렁에 돋아서 뜯는 재미가 좋았다. 소쿠리 가득 쑥을 뜯어 가면 엄마는 쌀가루를 묻혀 솥에 쪄내거나 묵은지를 썰어 넣고 국을 끓였다. 아버지가 좋아하는 국이었다. 이때쯤엔 나물 캐기만 좋은 것이 아니었다. 산에 드문드문 진달래가 피고 잎이 무성해진 산능금 나뭇가지에 조롱조롱 꽃대가 달렸다. 학교 가는 길이 온통 먹을 것 천지가 되었다. 연한 진달래 꽃잎을 한 주먹씩 따서 입 안에 넣고 씹는 것보다 시큼한 산능금 이파리나 포도송이처럼 주르륵 매달린 꽃대를 훑어 먹는 게 제일이었다.

따뜻하고 기분 좋은 햇살에 취해 우리는 산에 올라 이것저것 따 먹느라 바빴다. 때마침 파리똥 나무에 다디단 열매가 빨갛게 익어가는 참이었다. 남자애들은 뭐가 급한지 달리기 선수처럼 우르르 내달려 벌써 학교로 가버렸고 여자애들 셋이 파리똥 열매를 따 먹다 말고 꽃다발을 만드는 중이었다.

멀리서 학교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시계가 없던 우리는 그제야 지각한 사실을 알아챘다. 순옥이와 나는 울상이 되어 경자 언니를 쳐다봤다.

“야들아, 우리 오늘 기양 학교 가지 마끄나? 어차피 벌씨 늦어 뿌맀는디.”

4학년 경자 언니는 여자애 중 나이가 제일 많은 대장이었다.

“그라믄 울 아부지헌티 맞어 죽을 틴디. 그럼 기양 이대로 집이 가자고?”

나는 아버지한테 혼날 일이 걱정이었다.

“이 바보 천치야, 아 멀라고 시방 바로 집으로 가서 우덜이 학교 안 갔다고 이실직고를 헌다냐?”

“그럼 어찌자는 건디?”

“아, 여그 산이서 맛난 거 실컷 따 먹고, 종이 인형도 그리고, 도시락 까묵다가 다른 애들이 학교 끝나고 오믄, 그때 우덜도 사알살 집으로 돌아가믄 될 거 아니다냐? 그믄 어른들이 우덜이 학교 안 갔다 온 중 어치케 알 것이여? 안 기어?”

대장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우리는 배가 고파질 때까지 산속을 돌아다니며 놀다가 밥 먹기 좋은 장소를 찾아 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노트에 종이 인형을 그리다 그것도 지겨워져 주변을 돌아다니며 고사리를 꺾었다. 들고 가기 좋게 떡갈나무 잎 서너 장을 따 감쌌다. 그때 저만치서 두런두런 남자애들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일단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남자애들이 지나가고 한참 지나서야 우리는 작전 성공에 들떠 웃고 떠들며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이 되어 학교 갈 준비를 마치고 마당에서 다른 아이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어제 일도 있고 해서 경자 언니나 순옥이랑 다시 한번 입을 맞춰볼 생각이었다. 아버지가 들일을 나가려고 지게 바작에 농기구를 챙겨 넣고 있었다. 경민이가 학교에 가기 위해 우리 집 마당에 들어서다 나랑 눈이 마주쳤다.

“야야 민주야, 너 어즈께 왜 학교 안 왔냐고 선생님이 물어봤으야, 도대체 왜 안 온 거여?”

내가 눈치를 주기 전에 경민이가 그만 큰 소리로 말을 뱉어 버렸다. 나는 얼른 아버지 쪽을 보았다. 아버지는 지게에 받쳐 놓았던 작대기를 잡아 빼 손에 쥐고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지지대를 잃어버린 지게가 그대로 고꾸라지는 통에 바작에 올려놓았던 농기구가 요란스레 바닥으로 흩어졌다.

“머여? 이녀러 가시내가 비싼 밥 처믹이서 학교 보내놨더니만 학교를 안 가? 멋 혔냐, 학교 안 가고 어디서 먼 지랄을 허다 집구석에 저녁때가 다 되야가꼬 기어 들왔냔 말여?”

지게 작대기가 오랑캐같이 쳐들어왔다. 나는 두 손을 모아 싹싹 빌면서 작대기를 피해 몸을 비비 꼬았다.

“아이고 지가 죽을 짓을 혔구만요. 잘못혔으요.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아부지. 다씨는 안 그리 께요.”

아무리 빌어도 매타작은 멈추지 않았다. 학교 가려고 마당에 들어선 동네 아이들이 모두 내가 맞는 걸 지켜보았다. 엄마와 언니는 이미 버스를 타러 나가고 없었다. 뒤늦게 밥 먹다 뛰어나온 주인집 아줌마가 아버지를 타일렀지만 사정없이 휘두르는 작대기 근처로 다가서지는 못했다.

“머리에 피도 안 말른 년이 어디서 중간치기질이여? 내가 오늘 니 버르장머리를 단단히 뜯어 고치벌랑게, 울어싸도 소용없는 중이나 알어.”

아버지는 내가 몸을 뱅뱅 돌리자 앞뒤 구분 없이 아무 데나 지게 작대기를 들이댔다. 나는 두 손으로 싹싹 빌다가 맞은 자리가 아파 손으로 문질렀다. 그러다 다시 빌기를 반복했다. 엉덩이를 문지르고 있던 손에 그대로 지게 작대기가 닿았다. 손톱이 깨지는가 싶더니 핏방울이 맺혔다. 매질은 멈추지 않았다. 흐르기 시작한 피를 본 나는 더 이상 빌지 않았다.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구경꾼들 얼굴을 하나하나 쳐다봤다.

개가 된 것 같았다. 마당에 서 있는 모두가 나를 공격하는 적으로 보였다. 몽둥이에 맞아 사지가 굳은 채 죽어가는 개를 떠올렸다. 그때도 이 사람들은 죽은 개를 빙 둘러서서 구경만 하고 있을까. 죽을 거면 차라리 어서 숨이 끊어지길 바랐다. 작대기가 계속해서 다리에 닿고 등을 후려쳤다. 내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자 아버지가 작대기로 힘껏 땅을 내려쳤다. 금 간 지게 작대기가 기어이 부러졌다. 잠깐 아버지가 매질을 멈춘 사이 주인아줌마와 정식이 오빠가 달려들어 아버지한테서 작대기를 빼앗았다.

동네 애들이 벌벌 떨고 있는 나를 끌다시피 데려갔다. 어떻게 발이 움직이는지 알 수 없었다. 몸에 남은 통증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가장 견디기 힘든 건 내가 맞는 것을 동네 아이들이 다 지켜보았다는 사실이었다. 이대로 땅바닥에 고꾸라져 죽어버렸으면 싶었다. 엄마가 아버지에게 맞고 나면 왜 자꾸만 농약병을 만지작거렸는지 알 것 같았다. 깨진 손톱에서 피가 계속 새어 나왔다. 되는대로 옷에 피를 닦았다. 손등이며 팔까지 검푸른 멍이 올라왔다. 절룩거리며 겨우겨우 학교에 가서 교실 의자에 앉으니 엉덩이가 쓰라렸다. 변소에 가서 옷을 걷고 몸을 살폈다. 배고 다리고 멍 안 든 곳을 찾기가 더 어려울 지경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