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 카지노 사이트

[2024 현경 신춘문예 장편소설 대상 – 민주의 방] 9회 바나나의 쓴맛

한열음 작가

2024-07-11     성현 기자

2024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 장편소설 대상 수상작 '민주의 방(한열음 작가)'을 매주 연재합니다. 단행본은 국내 대형서점 및 인터넷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2024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 장편소설 대상 수상작] 민주의 방

 

09회. 바나나의 쓴맛

월요일 운동장 조회 시간에는 교장 선생님의 특별한 발표가 있었다.

“이제 우리 학교 어린이들도 도시의 아이들처럼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대 선배님께서 서울에서 출판사를 운영하고 계시는데, 사랑하는 후배들을 위해서 거금 300만 원에 해당하는 책을 흔쾌히 기증하기로 하셨습니다.”

나는 손바닥이 아플 때까지 계속 박수를 쳤다. 이제 더 이상 아버지의 ‘화훼작물’ 책을 보지 않아도 되었다. 방학 때마다 언니 오빠들 새 교과서를 읽으러 동네를 돌아다니지 않아도 읽을거리가 넘쳐날 것이었다. 작년 말에 급식소가 생겨 밥을 공짜로 먹을 수 있게 된 것보다, 임춘애 선수가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것보다 기뻤다. 급식소를 도서관 겸용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벽을 따라 책장이 죽 놓였고 그 안에 새 책이 가득 들어찼다. 점심시간에는 밥을 먹고 그 외에는 책을 보는 도서관이 되었다. 쉬는 시간이나 아침 일찍, 또 학교가 끝나고 다섯 시까지 누구라도 와서 책을 꺼내 읽을 수 있었다. 단, 책을 가지고 급식소 밖으로 나가는 것은 금지였다.

아침부터 진주를 재촉했다. 밥을 빨리 먹고 서둘러 학교에 가야 조금이라도 더 책을 읽을 수 있는데, 세월아 네월아 천천히 밥을 뜨는 진주가 얄미웠다. 그렇다고 동생을 떼어놓고 혼자 가자니 아버지가 그냥 둘 리가 없어 발만 동동 굴렀다. 진주는 상이 차려진 마루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눈치도 없이 고봉밥 한 그릇을 다 먹고 누룽지까지 양껏 챙겨 먹고서야 일어섰다.

“내가 앞으로는 학교에 빨리빨리 댕기얀다고 그르케 일러싸도 너는 왜르케 말귀를 못 알어먹는 거여?”

학교에 가는 내내 나는 진주를 들들 볶았다.

“하이고, 알었어. 내가 언능 뛰어가믄 되잖여. 언니나 후딱후딱 따러 오랑게, 아 늦었담서 왤케 걸음은 느림보 거북이랴?”

아닌 게 아니라 동생이 뜀박질을 시작하면 나는 맥없이 뒤로 쳐졌다. 키도 작은 것이 어찌나 달리기를 잘하는지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급식소에는 벌써 학생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동화책을 읽고 있었다. 나도 책장에서 ‘한국 전래 동화’를 가져와 읽었다. 글씨들을 따라 들어간 세계는 눈 깜짝할 사이에 나를 홀렸다. ‘유머 1번지’에서 코미디언들이 나와 웃기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재밌었다. 그렇게 키득키득 웃으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새 수업 시작종이 울렸다. 다 읽지 못한 책의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수업 내용은 머리에 하나도 안 들어왔다.

처음엔 다섯 시가 되도록 급식소 가득 아이들이 앉아 책을 읽었지만 얼마 못 가 다들 딴 놀이를 찾아 사라졌다. 수업 후 나 혼자 급식소에 남아 책을 읽게 된 것은 도서관이 생기고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진주는 정진이 따라 먼저 집에 보냈다. 여유롭게 도서관을 독차지하고 나면 동화 속 공주님이 안 부러웠다.

가을이 깊어지고 해는 점점 빨리 떨어졌다. 도서관 관리를 맡은 영양사 선생님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관사와 급식소를 오갔다. 내가 마감 시간인 다섯 시를 넘어 여섯 시가 되도록 집에 가지 않고 책을 읽은 지 여러 날째였다.

“민주야, 너 진짜 산길 위험해서 어쩌려고 그래? 이제 진짜 그만 집에 가. 집도 젤 먼 애가.”

“아 선생님, 이거 몇 장만 더 읽으믄 된 게 따악 이거만 읽고는 일어날 거고만요.”

선생님이 다시 관사로 건너간 사이 나는 다 읽은 책을 책장에 꽂고는 얼른 새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도저히 너 안 되겠다. 그냥 그 책 집에 가지고 가서 읽어라.”

다시 도서관으로 들어온 선생님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얼레, 참말로 그리도 된대요? 그르케만 해 주시믄 성은이 망극허겄고만요.”

“그래. 그 대신 절대로,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된다. 능암 애들한테도, 알았지? 소문나면 골치 아프니까.”

선생님은 여러 번 다짐을 받은 다음 나를 돌려보냈다. 나는 집에 가는 길에도 어두워서 글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책을 펴들고 읽으면서 걸었다. 집에 늦게 온다고 자주 아버지한테 혼났지만 그런 건 안 무서웠다. 매일 매일 읽어도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이 많다는 사실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나는 이 기쁜 소식을 언니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편지를 썼다. 배운 대로 알록달록 예쁘게 변해가는 능바우의 산과 들에 대해서 자세히 쓴 다음 언니는 잘 지내고 있는지 물었다. 나는 도서관이 생겨서 매우 잘 지낸다고 썼다. 언니도 능바우에 있었으면 내가 매일 새 책을 빌려다 주었을 텐데 안타깝다고. 다음에 오거든 내가 책에서 읽은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겠다고 하고 끝을 맺었다가 다시 ‘추신’이라고 쓴 다음 두 줄을 덧붙였다.

‘언니가 갖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하랬지? 사실은 나 요즘 유행하는 모자 달린 머리핀이 갖고 싶은데 다음에 올 때 사다 줄 수 있어?’

편지는 아직 우체통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그날 밤 나는 모자가 달린 핀을 머리에 꽂고 동화책 주인공들과 새들이 노래하는 숲속을 거니는 꿈을 꾸었다.

6학년이 되었다. 아버지가 겨우내 나뭇단을 쌓아두었던 헛간을 치웠다. 한쪽 헛간에 나뭇단을 다 옮기고 원래 주인집의 외양간이었던 곳을 대빗자루로 쓸어냈다.

“아버지 여그는 멀라고 이르케 비워 논데요? 88올림픽이 우리 집이서 열리는 것도 아닌디.”

“낼 송아치가 올 것이여.”

“누구네 송아지요? 우리 송아지요?”

“잉, 그려, 은주가 송아치 사라고 돈을 보내서 한 마리 샀다. 낼 올 것이여.”

“오메, 송아지 그게 을매나 비싼 것인디 언니가 그걸 다 사준대요?”

“잔소리 고만허고, 인자 너랑 서준이가 부지런히 꼴도 비어 오고 혀서 잘 믹이야 혀. 암송아치로다 샀응게 새끼도 보고 그리야지. 그리고 인자 설거지허고 남은 물 그냥 내삐리믄 안디야, 꾸정물통이다가 잘 모아뒀다가 송아치 밥 줄 때 같이 주얀게.”

트럭 짐칸에 실려 온 온 송아지의 기다란 속눈썹이 눈물에 젖어 있었다. 송아지는 어두운 외양간을 빙빙 돌면서 ‘으옴마아, 으옴마아아’하고 울었다. 서울에 올라간 언니가 자기 방에서 꼭 그렇게 오래 울었을 것만 같았다. 마당 가에 가서 아무 풀이나 손으로 뜯어다가 송아지 입에 대 주었다. 송아지가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혀로 풀을 낚아챘다. 송아지는 아래턱을 좌우로 움직이면서 풀을 씹었다. 그 소리가 듣기 좋아 자꾸만 풀을 뜯어다 주었다. 풀은 먹는 족족 물로 변하기라도 하는 것인지 커다란 눈에서는 눈물이 자꾸만 흘러 누런 털을 적셨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나는 작은오빠를 따라 들로 돌아다니며 팔에 풀독이 오르도록 부대 가득 꼴을 담아 왔다.

송아지 눈에서는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았고 갈색 털은 뽀송뽀송하다 못해 번지르르 윤이 났다. 가뭄에도 벼는 더 이상 푸를 수 없게 초록이 짙었고, 시간은 온갖 식물들의 키를 쑥쑥 늘리더니 기어이 매달린 열매들을 탐스럽게 살찌웠다. 올림픽에서 한국이 세계 4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다. 세계 선수들이 제 나라고 다 돌아가고도 올림픽 이야기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 열기를 식히기라도 할 것처럼 날이 이내 서늘해졌다.

싱싱한 풀을 먹던 송아지는 더 이상 먹을 풀이 없었다. 부지런히 길러낸 곡식들을 사람들이 다 거둬가고 텅 빈 논밭에는 겨울을 알리는 바람만 점점 거세졌다. 아버지는 사랑방 뒤쪽 아궁이에 커다란 가마솥을 하나 들였다. 작두로 잘게 썬 지푸라기를 넣고 쇠죽을 끓였다. 구정물을 담던 양동이에 쇠죽을 퍼 여물통으로 날랐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쇠죽 위에 사료를 흩뿌렸다. 그러면 송아지는 기분이 좋아서 ‘음매에-’하고 소리를 지르고는 고개를 푹 처박고 먹는 데 열중했다. 송아지가 풀을 씹는 소리만큼이나 쇠죽을 씹는 소리도 듣기 좋았다. 화가 나는 일이 생기면 일부러 소에게 여물을 주고 그 소리를 들었다. 여름에 끼워놓은 코뚜레는 어느새 반질반질해졌고 콧구멍 사이 상처도 깨끗이 아물었다.

‘송아지는 이제 엄마가 보고 싶지 않은 걸까. 언니는 이제 능바우가 그립지 않으려나.’

“낼 엄마 서울 가믄 사흘은 걸린 게 니가 아버지 진지 잘 지어서 디리야 써, 알겄지?”

“하이고, 또 할머니가 겁나게 싫은 소리 한참 허시겄고만.”

친할머니와 외할머니의 생신은 하루 차이였다. 그래서 엄마는 늘 외할머니 생신에 못 가다가 올해는 큰오빠랑 언니도 볼 겸 서울에 다녀오기로 했다. 아버지는 해마다 자기 엄마 생일뿐 아니라 평소에도 자주 얼굴을 보고 지내면서도 몇 년 만에 엄마가 외갓집에 가는 일로 며칠째 짜증을 부렸다. 엄마는 농사지은 것들을 바리바리 싸 들고 아버지 눈치를 보면서 첫차를 타고 서울로 갔다. 나는 할머니 생신날 아침 일찍 엄마 대신 큰집으로 가서 큰엄마를 도왔다.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었지만 할머니가 부엌을 오가며 계속 엄마 욕을 하는 것은 듣기 힘들었다.

사흘 만에 마을에 들어서는 엄마의 손에는 올라갈 때보다 더 큰 보따리가 들려 있었다. 양손뿐만 아니라 머리에까지 보따리를 이고 걸어왔다. 외숙모가 챙겨준 옷가지들이 대부분이었다. 새 옷은 아니지만 엄마나 언니가 가끔 서울에서 가져오는 옷은 시골에서는 보기 드문 예쁜 것들이 많았다. 동생이랑 나는 엄마한테서 보따리를 하나씩 뺏어 들고는 풀어헤쳤다. 그런데 보따리 안에 노란 바나나 한 송이가 들어있는 것이 아닌가. 텔레비전에서만 보았던 그 바나나랑 정말 똑같이 생겨서 나는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오메, 이것이 참말로 바나나 아닌게벼, 엄마?”

“그려, 그것이 바나나랴. 느그 외숙모가 기차 타고 감서 먹으라고 하나 사주드라.”

“오메, 외숙모네는 겁나게 부잔가비네. 부자들이나 먹는 바나나를 턱 허니 사주고.”

바나나 송이는 깨끗했다. 어느 거 하나 꺾어 먹은 흔적이 없었다.

“엄마, 근디 엄마 기차서 먹으라고 사줬담서 왜 하나도 안 먹은 거여?”

“엄마는 으른인디 이런 거 달어서 먹간디, 그거 이리 내 봐라.”

엄마는 바나나 송이를 가져가더니 세 등분으로 갈랐다. 세 개씩이었다. 그러고는 내 앞으로 한 덩어리를 쑥 내밀었다.

“아나, 이거 정록이네 갖다주고 와라. 엄마가 서울 갔다 옴서 사 왔는디 잡숴 보시래요잉 허고.”

“하따, 이르케나 많이 갖다 주야겄어? 그냥 암말도 말고 우리 식구끼리 먹으믄 안될랑가. 이 귀헌 것을 어뜨케 준디야, 아까서.”

“그리도 그리믄 쓰간디, 옆집 아줌마가 평소에 느그들 먹을 거를 을매나 많이 갖다주시는디. 이를 때라도 은혜를 갚으야 사람이지.”

그럼 저 두 개는 우리가 먹는 거지?”

“아, 하나는 느그 할머니 잡숴보라고 갖다 디리야지. 이거는 내가 낼 사탕이랑 같이 갖고 가서 서울 댕기왔다고 인사 디리야지. 안 그리도 생신에 못 가서 단단히 역정나싰을 틴디.”

엄마는 보따리에서 자두맛 사탕 한 봉지를 꺼내 들었다.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간식이었다. 할머니는 항상 벽장에 딱딱한 사탕을 넣어두고는 우리가 심부름을 가거나 하면 인심 쓰듯 사탕 하나를 이로 쪼개서 바스러진 사탕 조각을 내주곤 했다.

“엄마는 배고파서 밥쪼께 먹으야 쓰겄응게 느들이 옷 보따리 좀 거시기 혀라잉.”

엄마는 부엌에서 데우지도 않은 찬밥과 김치를 꺼내오더니 옷도 갈아입지 않고 마루에 앉아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하이고, 누가 보믄 매칠은 쫄쫄 굶은지 알겄네잉. 그르케 배가 고프믄 엄마도 바나나라도 하나 먹지 그맀어.”

“그게 배고프다고 막 먹어버리믄 쓰간디. 바나나 그런 거 먹어봤자 달어서 입맛만 비리지 머.”

엄마는 밥을 먹고는 바나나 하나를 집었다. 껍질을 벗기더니 반 토막은 아버지한테 드리고, 나머지 반 토막은 세 등분으로 잘라 오빠랑 나, 동생 입에 넣어 주었다. 남은 두 개는 다락방 올라가는 계단에 놓았다. 바나나는 너무 달아서 입에 넣자마자 사탕처럼 녹아버렸지만 향긋한 냄새가 한동안 입안에서 가시지 않았다. 바나나가 꿈처럼 달아서 나는 알아버렸다. 사람이라면 절대로 바나나를 싫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게 아무리 엄마라도 말이다. <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