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지성사/ 이장욱 지음

[현대경제신문 안효경 기자]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자유롭게 유영하며 시적 언어의 우아함과 모던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던 저자는 이번 시집에서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단일한 화자가 아닌 다양한 사람의 각각의 외로움 속으로 묵묵히 걸음을 옮긴다.

배우, 마술사, 가수, 살인자, 우체국장, 대학 시절에 쓴 소설의 주인공까지. 시 속의 화자는 “음악집” 안에 모여 화음을 만들어내기 위한 “엑스트라 배우”가 아니다.

각자의 삶이 빗방울이 되어 후드득, 시인의 눈앞에 떨어졌을 뿐이다. 시인은 사람들이 끝끝내 털어놓지 않은 비밀까지 헤아리기 위해 자기 자신을 삶이 아닌 죽음, 살아 있지 않은 상태와 가까이 두고 한층 더 초연해진다. 사랑에는 각주가 필요치 않고, 죽음에는 변명이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이미 죽어 있는 시인의 시선에서는 어떠한 구원이나 저주를 갈망하는 태도를 찾아볼 수 없다.

무심히 뒤를 돌아보는 순간, 고요하고 쓸쓸한 시인과 그의 시(詩)만이 남아 삶의 불안함에 대해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이때 진정한 결별의 의미를 알게 된 독자는 개인의 외로움이 짙어지고 세계와는 더욱 가까워지는 경험을 비로소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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