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열음 작가

2024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 장편소설 대상 수상작 '민주의 방(한열음 작가)'을 매주 연재합니다. 단행본은 국내 대형서점 및 인터넷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삽화=조민성 화백]
[삽화=조민성 화백]

[2024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 장편소설 대상 수상작] 민주의 방

04회. 여름, 그리고 가을

학교 수업이 영영 끝나지 않기를 빌었다. 수업이 끝나면 다시 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그럴수록 시간이 너무 빨리 흘렀다. 마지막 수업 시간에는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웠다. 내가 돌아갈 곳은 아버지가 있는 집밖에 없었다.

집에 가는 내내 나한테 말을 거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당연했다, 나는 개니까. 아이들은 우리 집 마당을 지나 집으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길도 없는 뒷산을 통해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도, 그다음 날도, 그 다음다음 날도 같이 놀자고 우리 집으로 나를 찾아오는 애들은 없었다. 투명 인간이 되면 재밌을 줄 알았는데, 밤이 되어 주위가 깜깜해지면 가슴과 배 언저리가 저릿하니 아파서 숨쉬기가 힘들었다. 시간이라도 빨리 지나가면 좋을 텐데 뭐가 아쉬운지 자꾸만 뒤돌아보느라 어느 때보다 느려터진 것처럼 느껴졌다.

큰 집 뒤뜰에 앵두가 빨갛게 익고 나서야 아이들은 다시 나를 찾았다. 능바우에서 탐스러운 앵두나무가 가장 많은 집이 우리 큰집이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손에 대접을 하나씩 들고 우리 집 마당에 들어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나를 불러냈다.

“민주야 니네 아부지 집에 기셔?”

내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제야 그 아이 목소리가 커졌다.

“참말로 다행이구만. 야, 앵두 따러 가자. 벌쎄 싹 다 익어부맀당게.”

투명 인간 놀이가 끝났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나는 부엌에서 대접을 하나 챙겨 아랫마을로 내려갔다. 우리 큰집 입구와 뒤뜰에 있는 앵두나무는 동네 애들이면 아무나 와서 따먹게 두었다. 그런데도 애들은 꼭 나나 작은오빠를 앞세우고 앵두를 따러 가자고 했다. 대접이 적당히 차자 아직도 많이 남은 열매를 그대로 두고 집으로 돌아왔다. 두 그릇씩 앵두를 따서 챙기는 애들은 없었다. 아무도 정하지 않았지만 그건 규칙처럼 지켜졌다.

비가 부슬거리는 일요일 낮에 할머니가 바가지 가득 앵두를 가지고 왔다.

“가시내들이 게을러 빠져가꼬, 아 뭣 헌다고 동네 애들이 앵두 다 따갈 동안이 코빼기도 안 비친다냐? 잉? 후딱후딱 와가꼬 따다가 즈그 아부지도 잡숫게 디리고, 잉, 오빠도 멕이고, 잉, 그리얄 거 아녀?”

내가 앵두를 건네받자 진주가 달려와 바가지에 손을 넣었다.

“하따, 이녀러 가시내가 어디서 버르장머리 없이 즈그 아부지도 안 자신 거에다 먼지 손을 대고 지랄이여, 지랄이? 잉?”

할머니가 진주 손등을 내려쳤다. 진주가 놀라서 손을 홱 빼다 바가지를 치는 바람에 앵두가 땅바닥으로 와르르 쏟아졌다.

“하여간 가시내들이 하나부터 열까지 즈그 오메 택여가꼬 쓰잘데기라고는 하나 없당게. 뭣 허고 멀뚱멀뚱 섰어? 얼른 주서 가꼬 시쳐서 아부지랑 오빠 들오믄 디리게 찬장이다 잘 느놓지 않고?”

나는 부슬거리는 비를 맞으며 마당에 떨어진 앵두를 바가지에 담아 수돗가로 가 씻었다.

“시쳐서 가시내들끼리 다 처먹지 말고 아부지 들오시믄 먼지 디리고, 오빠 오믄 주고, 남거들랑 가시내들이 처먹든가 혀. 알겄냐? 잉?”

할머니는 한참을 더 지켜보다가 기어이 한마디 더 던지고서야 발길을 돌렸다.

“예에-.”

나는 부러 큰 소리로 대답했다. 진주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멀어져가는 할머니 눈치를 보면서 내 옆에 쪼그려 앉았다. 나는 할머니 모습이 멀어지기 무섭게 동생이랑 바가지째 들고 문턱에 앉았다. 우리는 마당으로 씨를 퉤퉤 뱉어가면서 배가 부를 때까지 앵두를 실컷 먹었다. 한 줌 남은 앵두는 마당 가 풀숲에 버렸다.

“찌깐 언니야, 왜 내삐리는 거여?”

“아, 고거빼니 안 냉깄다고 혼날 거 아니냐? 증거를 없애 부리야지.”

장맛비가 계속 퍼부었다. 마당의 흙바닥엔 벌써 여러 갈래의 물길이 생겨난 지 오래였다. 엄마가 좋아하는 핏빛 접시꽃은 축축 처져 빗물을 흘렸다. 나는 문턱에 걸터앉아 슬레이트 지붕골을 따라 흐르는 빗줄기들 사이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끊어지지 않는 빗줄기가 빽빽한 감옥 창살 같았다.

‘벼얼비치 흐르으는 다리를 건너어~.’

방안에선 벌써 몇 번째 같은 노래가 반복됐다. 이따금 천둥소리에 묻혀 노래가 끊겼다. 본채 뒤뜰의 대나무밭이 그날따라 더 시커멓게 보였다.

‘짝-!’

등이 따가웠다.

“이녀러 가시내가 문턱에 앉지 말라고 그르케 말혀싸도 또 그러고 자빠졌네. 복 달어난다고 거시기 혔냐 안혔냐? 잉?”

지겨운 복타령이었다. 부모님은 어렸을 때 얼마나 문턱에 많이 앉아 있었기에 우리 집이 이렇게 가난할까. 비가 무섭게 내려 잠시 일손을 놓고 아버지에게 노래를 배우고 있던 엄마는 부엌 한쪽에 접어두었던 비닐을 몸에 칭칭 감기 시작했다.

“엄마, 비가 겁나게 내리쌌는디 어디 갈라 그려?”

“호박이랑 꼬추 쪼매 따가꼬 올팅게. 너는 후딱 방에 들어가서 거시기 허고 있어라잉, 댕겨와서 거시기 헐랑게”

“아따, 엄마가 본다고 뭐슬 알간디? 허구헌 날 검사를 헌다고 그리싼데?”

“이녀러 가시내가 버르장머리 없이 엄마를 거시기허고 지랄이여? 핵교서 그르케 갈켰냐?”

나는 엄마에게 등짝을 한 대 더 얻어맞고 나서야 방에 들어가 한쪽 모서리가 비에 젖어 눅눅해진 책을 펴고 숙제를 했다. 교과서는 긴 장마에 젖었다 마르기를 반복한 통에 책장이 온통 오돌오돌했다. 장마가 끝나면 교과서가 펴지려나.

엄마 말처럼 지긋지긋한 장마가 그치고 방학이 시작되었다. 나는 여름방학이 정말 싫었다. 방학뿐만 아니라 학교에 안 가는 일요일도 싫었다. 농사일은 뭐든 다 싫었지만 그중에서 가장 괴로운 건 벼에 농약을 치는 일이었다. 언니랑 오빠가 농약이 빨려 들어가는 기계를 젓고, 아버지가 분무대를 잡고 움직이는 대로 동생과 나는 중간에서 호스가 꼬이지 않도록 지켰다. 약 냄새에 놀란 뱀이 언제 발밑으로 기어 나올지 몰라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줄을 잡고 논두렁에 서 있을 때 바람이라도 불면 가느다란 농약 방울들이 얼굴로 날아들었다. 저녁에 집에 오면 우리는 메슥거리는 속 때문에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지겨운 여름방학이 어서 끝나기만을 빌면서 잠들었다.

농사일을 도운 애들뿐만 아니라 여름 내내 개울로 헤엄치러 다닌 아이들까지 얼굴이 갈색으로 변해야 방학이 끝났다. 아직은 한여름처럼 더웠지만 그래도 밤송이마다 토실토실 살이 올랐고 깨금과 머루, 산능금 열매도 먹음직스레 익었다. 학교 앞 가게에서 파는 과자가 백배는 맛있었지만 능바우 애들은 돈이 없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산이 주는 군것질거리는 언제나 공짜였으니까. 채 벌어지지도 않은 초록색 밤송이를 따 가시 옷을 벗기면 조그만 풋밤이 나왔다. 우리는 이빨로 껍질을 벗기고 오도독오도독 밤을 씹어 먹었다. 풋밤은 보늬도 연해 잘 까졌다. 생밤으로 먹기엔 잘 익은 갈색 밤보다 풋밤이 더 맛있었다. 밤송이 까기가 귀찮은 날엔 깨금을 따 먹었다. 이것도 밤처럼 씹는 맛이 좋긴 했지만 열매가 워낙 작아서 웬만큼 따 먹지 않으면 기별도 안 갔다. 으름도 씨를 뱉기 바빠 별로였다. 산에 널린 먹을거리 중 최고는 봄이나 가을이나 역시 산능금이었다. 봄에 그렇게 꽃을 따먹었는데도 가을 산은 까맣게 익은 산능금 천지였다. 새콤달콤한 것이 맛도 맛이지만 가지 채 뚝 꺾어 들고 집에 가는 내내 따 먹으면 되니 편했다. 입술이 시커메지도록 다 따먹고 나서 가지는 아무 데나 훅 집어던지면 그만이었다.

능바우 애들은 학교가 끝나고 집에 오면 자루를 하나씩 들고 산으로 들어갔다. 익어 저절로 떨어진 상수리나 산 밤을 줍기 위해서였다.

“야, 오늘은 우덜끼리 쩌어그 큰골로 가보자. 거그가 상수리가 겁나게 많댜.”

정록이가 의기양양하게 앞장을 섰다.

“그려, 근디 너 진짜 길은 잘 아는 거여? 언니 오빠들 없이 우덜끼리 가도 될랑가.”

“기양 가믄 되지 뭐. 갔다가 몰르겄으믄 높은 디로 올라가서 동네 보이는 디로 내리오믄 될 거 아닌게벼.”

“하따 이를 때는 정록이 너 디게 똑똑헌 거 같다잉.”

자루를 허리에 차고 정록이를 따라 큰골로 올라갔다. 그런데 아무리 올라가도 참나무가 안 보였다.

“야야 상수리나무도 웂는디 어디가 상수리가 많다는 거여? 맨놈의 소나무 뿐이잖여.”

“긍게, 울 엄마가 여그가 상수리가 겁나게 떨어졌을 거라고 혔는디. 여그가 아닐랑가.”

상수리는 몇 개 줍지도 못하고 우리는 목이 말라 골짜기 물을 찾았다. 물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골짜기는 어느 산이나 있기 마련이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양손을 땅바닥에 짚고 엎드려 물을 쪽쪽 빨아 마셨다.

“야, 나 까재 잡었으야.”

경민이가 가재 한 마리를 잡아 들고 자랑했다. 정록이랑 나도 질세라 도랑의 돌멩이란 돌멩이는 다 들춰냈다. 돌을 치우는 족족 가재가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봄처럼 말린 꼬리에 알을 품고 있지는 않았지만 제법 살이 올라 큼직했다. 우리는 물줄기를 따라 쭉 걸어 내려오면서 계속 가재를 잡아 자루에 담았다.

“야들아, 벌쎄 저녁 되야브렀는디.”

정록이가 허리를 펴고 말했다. 그제야 경민이랑 나도 고개를 들고 주위를 살폈다. 산속으로 푸르스름하게 저녁 기운이 서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우리는 가재 잡기를 그만두고 자루를 흔들면서 산에서 내려왔다.

엄마는 고추장을 푼 물에 호박을 썰어 넣고 가재로 국을 끓였다. 나는 엄마가 불을 때는 아궁이 앞에 앉아 나뭇가지에 가재를 끼워 구웠다. 가재가 빨갛게 익으면 재를 털고 딱딱한 껍질까지 바삭 깨물어 먹었다.

가재로 끓인 국을 잔뜩 먹었더니 초저녁부터 잠이 쏟아졌다. 얼마나 잤을까. 언니가 나를 흔들어 깨웠다.

“야야, 쪼매 인나야 쓰겄어.”

“아, 왜 그려, 나 디게 졸린디.”

“나 똥 매라. 변소깐이 좀 같이 가잔게.”

“또? 언니는 중학생이나 됐음서 밤이 똥 쌀 때마다 나를 꼭 딜꼬 가야 쓰겄어? 인자 혼자 댕기도 되잖여어.”

“죽었다 깨나도 변소깐은 혼자 못 간 게, 후딱 인나 봐라, 아 언능. 꿈지락거리다 바지다 싸겄어.”

기어이 언니는 자는 나를 깨워 앞세웠다. 변소는 마당을 가로질러 좁은 길을 조금 더 걸어 내려가면 나타나는 정록이네 밭 입구에 있었다. 내가 손전등을 들고 앞에 걸으면 언니가 뒤에서 내 옷을 붙잡고 따라왔다. 아홉 살인 나도 혼자서 밤에 변소를 잘만 다니는데 언니는 한 번도 혼자서 가는 걸 못 봤다. 중학생이 된다고 겁이 다 없어지는 건 아닌가 보았다. 내가 잠든 사이 밤이 꽤 깊었는지 별을 잔뜩 품은 하늘이 지붕 위로 바짝 내려와 능바우를 기웃거렸다. 조금 쌀쌀했고 풀벌레들이 합창 대회라도 벌이는 것처럼 사방에서 울어댔다. 도대체 이런 밤이 뭐가 무섭다는 것인지 손톱만큼도 이해할 수 없었다.

“자, 언능 들으가서 후딱 싸고 와.”

나는 손전등을 언니한테 건넸다.

“너는?”

“나는 뭐, 달도 훤헌 게 후라시 없어도 되겄는디.”

“아니, 그게 아니고, 너도 들오라고.”

“또? 여그 밖이 섰으믄 됐지. 내가 안 무섭게 계속 말 시키믄 되잖여, 맨날 똥 냄시 나게 나까지 들오라 그려.”

언니가 울상을 해서 나는 할 수 없이 변소에 따라 들어갔다. 착한 언니가 우는 것은 정말이지 싫었다. 언니가 댓돌 위에 올라서자 ‘덜크덩’하고 돌이 흔들렸다. 언니가 똥을 싸는 동안 나는 구린내를 맡으며 손전등을 들고 쪼그려 앉아 있었다.

“나 다 쌌은 게 다시 밑에 좀 비춰 봐라잉.”

“하이고 똥깐이 빠질깜시 그려? 구데기들이 자다가 훤허다고 놀래서 잠이 홀딱 다 깨겄고만.”

언니는 변소에 내려갈 때는 뒤에서 내 옷을 잡고 따라오더니 갈 때는 자기가 앞에 서서 나보고 발밑으로 손전등을 비추라고 했다. 아무래도 화장실 앞으로 쫙 펼쳐진 들판이 무서운 모양이었다. 걷다 말고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산이 들판 너머로 시커멓게 버티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뭔가 튀어나올 것 같긴 했다. 나도 모르게 언니 허리춤을 꽉 붙잡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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