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열음 작가

2024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 장편소설 대상 수상작 '민주의 방(한열음 작가)'을 매주 연재합니다. 단행본은 국내 대형서점 및 인터넷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2024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 장편소설 대상 수상작] 민주의 방

06회. 균형

비를 맞은 농작물만 몸집을 키운 것은 아니었다. 여름과 가을을 지나고 나도 키가 부쩍 자랐다. 큰비가 내리던 날, 불어난 개울을 건너는 순간 다 커버린 것이라고 나는 믿었다. 가을걷이가 끝나고 열매들이 나무에서 거의 다 떨어졌다. 낙엽에 파묻힌 열매들은 산짐승들 몫이었다.

능바우에는 본격적인 사냥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철사로 만든 올가미를 하나씩 들고 등굣길에 나섰다. 산토끼 똥이 많이 있는 곳이나 새털이 남아 있는 곳 위주로 올가미를 놓고 학교에 갔다.

“야야, 정록아 요거시 산토끼 똥 아니다냐? 여그다 내 올가미 놓으믄 쓰겄냐?”

공부만 빼고 뭐든지 잘하는 정록이한테 동글동글한 똥이 토끼 똥이 맞는지 확인했다. 

“비슷허긴 헌디 이건 토끼 똥이 아니고 노루 똥이여. 토끼 똥보다 더 크고 누렇잖여. 어차피 우덜은 노루는 못 잡은 게 딴디다 노야 쓰겄는디.”

“노루? 아, 노루 새끼 한 마리만 거시기허믄 을매나 좋것냐잉. 그럼 돈을 겁나게 벌 틴디. 밤마다 총소리 들리는 것이 노루 사냥 온 사람들이 쏘는 거라매?”

“맞댜, 나도 자다가 총소리 나믄 무서 죽겄당게. 오줌 쌀 뻔 혔으야.”

나는 정록이가 알려준 곳에 올가미를 놓고 학교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올가미 놓은 자리를 돌아봤다. 나나 경민이가 놓은 올가미에 토끼가 걸린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정록이 올가미에는 종종 산토끼가 버둥거렸다.

딱 한 번, 정록이가 토끼를 두 마리 잡은 날 한 마리를 줘서 집에 들고 간 적이 있었다. 엄마는 토끼 가죽을 벗기고 매운 양념을 더해 닭볶음탕처럼 요리했다. 닭보다 조금 질기긴 했지만 기름기가 적어 맛은 더 좋았다. 그래서 틈만 나면 나도 산토끼를 잡아 다시 요리해 달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토끼가 어찌나 날랜지 쉽사리 내 손에 들어오지 않았다. 올가미에는 흔적도 남기지 않던 토끼는 집에 가는 길에 종종 우리 앞으로 튀어나왔다. 녀석은 귀를 쫑긋 세우고 앞발을 들고 서서 우리를 놀리듯이 바라보다 냉큼 사라졌다. 그래도 종종 아버지가 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산토끼를 잡아 오는 날에는 우리 식구들도 산토끼 고기를 실컷 먹었다.

“야야, 쉿! 조용히 혀 봐라잉.”

정록이가 집에 가다 말고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댔다. 정록이 말을 들으면 웬만해서는 손해 볼 일이 없었다. 경민이랑 나는 걸음을 멈추고 정록이가 가리키는 쪽을 보았다. 풀숲에 꿩 여러 마리가 종종종 걷고 있었다. 한 마리는 몸집이 제법 큰 까투리 암꿩

였고 나머지 여러 마리는 다 새끼였다. 깃털이 화려한 장끼 수꿩

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숨을 죽이고 꿩무리를 향해 슬그머니 다가갔다. 눈치가 빠른 어미는 ‘푸드득’ 날아가 버렸고, 아직 날지 못하는 새끼 몇 마리만 우리 손아귀에 들어왔다. 손에 닿는 꿩 털이 보드랍고 따뜻했다.

“야, 이걸 어찐다냐? 너무 애기 새라서 집에 가꼬 가도 별라 먹을 것도 없겄는디.”

정록이가 양손에 새끼 꿩 한 마리씩을 움켜잡고 말했다.

“아, 그라믄 데리다 키워서 잡어먹으믄 안 될랑가?”

내가 잡은 새 한 마리를 두 손으로 꼭 그러쥐고 말했다. 모처럼 사냥에 성공한 참이라 놔주기 아까웠다.

“이거보다 허빼 찌깐헌 참새도 먹는디, 이거라고 먹을 것이 왜 없겄어? 안기어?”

경민이도 풀어 주기는 싫은 모양이었다.

“야야, 그리도 아직 날지도 못 허는 애들을 잡어먹는 것은 쫌 그린디. 걍 놔주자. 불쌍허기도 허고, 야들이 좀 크믄 그때 다시 거시기허믄 되지 않겄냐잉.”

“야, 이 바보 멍충아, 누가 크믄 나 잡어 갑소 허고 도로 잽혀준다가니?”

나는 답답해서 소리쳤다. 

“야들아, 걍 놔주자. 그 대신 내가 담에 때까치나 토끼 잡으믄 니네들 먼저 주께.”

“음, 나는 때까치 고기는 싫은 게 토끼 잡으믄 줘. 그르믄 놔주고.”

나는 얼른 토끼로 딱 못 박아 말했다.

“알었어, 알었어. 토끼로 주믄 되잖여. 토끼, 토끼로 줄라느만.”

나와 경민이는 그 말에 잡고 있던 꿩 새끼를 풀어놓았다. 새끼들이 총총총 우리에게서 멀어졌다. 어디선가 ‘쿠엉쿠엉’ 꿩이 울었다.

겨울 방학이 시작되면 동네 아이들은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 연살을 다듬었다. 가오리연, 방패연, 그냥 막 연. 내 멋대로 그림을 그려 넣은 창호지에 밥풀로 연살을 붙이고 크레파스로 색을 입힌 꼬리도 멋들어지게 달았다. 하늘로 두둥실 떠올라 바람을 타는 내 가오리연을 상상하면서 학교 가는 길 입구 언덕에 올랐다. 세로로 무덤 세 개가 경사지게 늘어서 걸리적거리는 덤불이나 나무가 없는 곳이었다. 연날리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언덕에는 며칠 간격으로 내린 눈이 녹지 않고 두껍게 쌓여 있었다.

언덕 밑은 정록이네 방죽이었다. 꽁꽁 얼어붙은 방죽에서는 아침부터 썰매를 들고나온 동네 아이들이 소란을 떨었다. 보는 아이들도 있겠다, 이제 멋지게 내 작품을 하늘로 띄우기만 하면 되었다. ‘모두가 그 멋진 모습에 감탄하면서 박수를 치겠지.’ 바람도 적당하니 하늘도 내 편이었다. 연을 머리 위로 힘껏 던지듯이 띄우고 빠르게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얼추, 연이 바람을 탄 것 같아 멈춰 서서 실이 감긴 나무 막대기의 양쪽을 잡고 천천히 줄을 풀었다. 연이 빠르게 내게서 멀어졌다. 썰매를 타던 아이들이 하나둘 소리를 죽이고 연을 지켜보았다. 색동 꼬리 세 개가 허공에서 하늘하늘 춤을 추었다. 완벽했다.

“하따, 연이 겁나게 이쁘네잉.”

‘그러면 그렇지. 누가 만든 건데’.

나는 보란 듯이 욕심껏 연줄을 풀었다. 방죽에서 노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온 동네 사람들이 내 연을 볼 수 있도록 더 높이 띄우고 싶었다. 그런데 멀쩡하게 잘 날던 연이 갑자기 한쪽으로 살살 맴을 돌기 시작했다. ‘줄을 너무 풀었나.’ 나는 서둘러 연줄을 손으로 툭툭 당겨 보았다. 연이 더 빠르게 돌았다. 이내 회오리바람처럼 요란을 떨더니 순식간에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아이들이 몇 마디 소리를 지르는가 싶더니,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다시 썰매를 탔다.

도대체 내가 만든 연은 왜 오래 떠 있질 못하는 것인지 생각할수록 약 올랐다. 아버지가 만들어 준 연은 균형도 잘 잡고 높이, 또 오래 하늘에 떠 있었지만 내가 만든 연은 아예 날지를 못하거나 하늘에서 뱅뱅 돌다 빠른 속도로 땅에 떨어지곤 했다. 아버지가 만들어 주면 되는데도 나는 기어이 낫을 들고 직접 연살을 깎아야 직성이 풀렸다. 아버지가 만든 연은 내 연이 아니었다.

“아, 그리게 연살을 골고루 잘 깎으야지. 한 짝은 뚜껍고 한 짝은 얄쿠란 게 야가 찌우뚱 허니 균형을 못 잡는 거 아녀. 아, 그리고 꼬리를 이르케 욕심껏 질게 달어 노믄 무거서 어뜨케 난다냐. 꼬리를 무겁게 달라믄 마빡이다가도 댓살을 하나 붙이주든가. 머시든지 균형이 맞으야는 거시여.”

아버지가 내 연살을 트집 잡았다. 연 말고 다른 건 하나도 균형을 못 잡는 사람이 누구인데. 표정을 감추느라 고개를 숙이고 내가 깎은 연살을 보았다. 내가 보기엔 잘 깎인 것 같았다. 나는 연살을 떼어내 칼로 다듬었다. 토방 한쪽에선 작은오빠가 통통하게 살이 오른 대나무를 반으로 갈라 낫으로 튀어나온 마디를 매끄럽게 손질하는 중이었다. 한참을 그러더니 다듬어진 대나무를 들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나는 손질하던 것들을 토방에 내려놓고 오빠를 따라갔다. 오빠는 아궁이의 남은 숯불에 대나무 앞쪽을 달구었다. 까맣게 그슬린 대나무에 힘을 주어 ㄱ자로 꺾었다. 한참을 그렇게 손으로 잡고 있다가 놓았다. 대나무는 굽어진 채 모양을 그대로 유지했다. 대나무 스키가 만들어졌다. 이제 손잡이용 작대기를 만들 차례였다. 오빠는 적당한 두께의 대나무를 골라 허리 높이에 맞춰 마디 바로 밑을 잘랐다. 막힌 마디에 녹슨 못을 박고 못대가리가 뾰족해질 때까지 돌에 갈았다.

오빠는 완성된 스키를 들고 내가 연을 날리던 언덕으로 갔다. 서둘러 오빠를 쫓아갔다. 진주도 따라왔다.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오빠는 언덕 입구에 서서 스키를 눈 위에 내려놓고 그 위에 올라타듯 발을 얹었다. 손잡이 막대를 이용해 균형을 잡고 양쪽 발을 앞뒤로 엇갈리게 몇 번 움직였다. 걸리는 거 없이 스키는 눈 위에서 잘 미끄러졌다.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하이고, 먼 놈의 뜸을 그르케 들인댜. 후딱 타 보랑게. 언능!”

오빠가 양팔을 살짝 드는가 싶더니 작대기를 힘껏 땅에 꽂았다. 스키를 탄 작은오빠가 앞으로 휙 하고 나갔다. 

“우와, 겁나게 재밌겄는디, 나도 잠 한번 타보믄 안 될랑가?”

“나도, 나도. 내가 2등여. 줄 스랑게.”

오빠의 스키는 인기 만점이었다. 

“다들 왜 그려? 울 오빠 거시긴 게 당연히 내가 먼지 타 보야지. 안 기어?”

오빠가 자랑스러웠다. 오빠처럼 나도 멋지게 스키를 타 보이면 곤두박질치던 연날리기 기억 따윈 아이들 머릿속에서 일찌감치 꺼진 불씨처럼 사라질 게 틀림없었다.

“아, 당연히 민주 니가 먼지 타 보야지. 암만. 그담이 나란 소리여.”

아이들이 내 뒤로 빠르게 줄을 섰다. 작은오빠가 스키를 바닥에 반듯이 놓고 나한테 손잡이를 넘겨주었다. 나는 손잡이를 땅에 콕 박고는 조심조심 한 발을 먼저 스키 위에 올려놓았다. 생각보다 스키가 미끈거려서 팔다리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나머지 한쪽 발을 스키에 올려놓으려는 순간 먼저 올려놓은 쪽 스키가 앞으로 주욱 미끄러졌다. 서둘러 손잡이를 떼었다 다시 땅에 꽂아 보았지만 스키는 한쪽 발만 싣고 앞으로 나갔다. 너무 빨라서 땅에 꽂힌 손잡이는 놓쳐버렸다. 나는 엉덩방아를 된통 찧었다. 아이들이 신이 나서 웃어댔다. 작은오빠가 제일 크게 웃었다. 나는 씩씩거리면서 미끄러진 스키를 주워 아이들 쪽으로 집어 던졌다.

“느덜은 을매나 잘 타는가 내가 똑똑히 지켜볼라느만!”

아이들은 잘 탔다. 능바우 애들은 신기할 정도로 운동 신경이 좋았다. 산에서도 잘만 달렸고, 높은 나무도 흔들리는 우듬지 근처까지 금방 올라가 홍시처럼 대롱대롱 매달리곤 했다. 나는 아니었다.

경민이가 넘어지긴 했지만 처참하게 넘어진 거로는 내가 일등이었다. 볼수록 분한 마음이 들어 스키를 뺏고 싶었지만 괜히 창피하니까 심술부린다고 할까봐 그러지도 못했다. 혼자 쌩하니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언니야, 같이 가.” 

내가 넘어진 걸 보고 스키는 타보지도 못한 진주가 코를 훌쩍거리면서 쫓아왔다. 내일은 그냥 비료 부대에 지푸라기나 넣어서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진주도 앞에 태우고. 언덕을 온통 반질반질하게 만들어 스키 따위는 타지도 못하게 만들 참이었다.

아침마다 서둘러 비료 부대를 들고 가 눈길을 닦았다. 하지만 능바우 아이들은 86아시안게임에라도 출전하려고 그러는지 스키 실력이 나날이 발전했다.

해가 바뀌었다. 어른들은 가을에 서울에서 열린다는 아시안게임 이야기를 자주 입에 올렸다. 꽃을 피워대느라 지친 봄이 여름으로 바통을 넘길 때쯤 도로 확장 공사가 시작되었다. 평소에 우리가 학교 다니는 좁은 산길 밑으로 차가 다닐 수 있도록 넓은 길을 만들어 군사용으로 사용할 거라고 했다. 차가 다닐 수 있다는 말에 이제 중학생 언니, 오빠들처럼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니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들떴다.

밤실 마을 쪽에서 굴착기와 불도저, 트럭들이 줄지어 올라왔다. 건장한 남자들 여럿이 마을로 들어왔다. 널찍한 사랑방 한 칸이 비었기 때문에 공사를 하는 동안 아저씨들은 우리 집에서 생활하기로 했다. 엄마는 돈을 받고 아저씨들 밥을 해주기로 해서 당분간 시장에 나가지 않아도 되었다. 학교에 다녀와도 엄마가 집에 있어서, 아저씨들하고 함께 밥을 먹을 수 있어서 꿈만 같았다.

동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면 공사하는 곳으로 서둘러 뛰어갔다. 아저씨들이 일을 마칠 때까지 땅바닥에 앉아 놀다가 굴착기를 따라 노래를 부르며 돌아왔다. 저녁을 먹고 나면 아이들이 하나둘 우리 집 마당으로 모여들었다. 우리는 마당에 둘러앉아 아저씨들이 해주는 옛날이야기를 들었다. 마당에는 일찌감치 멍석이 깔리고 쑥대를 태운 모깃불이 뭉게구름을 만들었다. 연기와 어둠이 엉겨 붙은 우리 집 마당은 금세 마법처럼 다른 곳이 되었다. 이야기는 듣고 또 들어도 질리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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