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열음 작가

2024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 장편소설 대상 수상작 '민주의 방(한열음 작가)'을 매주 연재합니다. 단행본은 국내 대형서점 및 인터넷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2024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 장편소설 대상 수상작] 민주의 방

08회. 깨엿

“언니야, 왜 그려? 학교서 선생님헌티 혼난 거여? 아니믄 또 아부지가 학교 가서 술 먹고 난리 친 거여?”

부뚜막 앞에 앉은 언니 눈이 퉁퉁 부었다. 아침에 언니네 학교에 간다고 나간 아버지는 날이 어두워지도록 귀가가 늦어지고 있었다. 모처럼 읍내리에 나갔으니 술집 어딘가에서 고약해져 있을 터였다. 내가 여러 번 묻는데도 언니는 말이 없었다. 벌게진 눈에서 눈물이 길게 흘러 아궁이 불빛에 따라 잠깐씩 빛나다가 턱 밑으로 뚝 떨어졌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술을 실컷 마시고 온 아버지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저녁 내 아무 말도 없던 언니가 무슨 정신인지 아버지 앞에서 큰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아버지 진짜 우리 아버지 맞어요? 어뜨케 선생님 앞에서 그르케 말씀허실 수가 있어요? 저는 주서 온 자식이래요?”

아버지 얼굴이 이내 험악해졌다.

“뭣이여, 이 버르장머리 없는녀르 가시내가 아버지헌티 말버릇이 그게 뭣이다냐?”

“애들 다 댕기는 복도에 서서는, 아들이 중학교에 들어오는디 먼놈의 가시내를 고등학교를 보내겄냐고 선생님헌티 따지듯이 말씀허신 게 그럼 잘허신 거래요?”

아버지 주먹이 언니 머리통을 내려쳤다.

“이녀르 가시내가 실컷 밥 믹이서 갈처 논 게 머리만 커서 즈그 아버지헌티 대드는 거 봐라. 싸가지 없게.”

“그려요, 가난헌 게. 고등학교, 그거 못 보내줄 수도 있어요. 그리도 부모라믄 속상해는 허야는 거 아녀요? 어찌믄 그르케 당당허게 선생님한테 따질 수가 있대요. 그리고 그냥 못 보내 주겄다고 조용히 말씀허시믄 될 일이지. 뭐가 그르케 자랑스런 일이라고 그리 큰소리로, 아들이 중학생 된 게 딸년은 돈 벌어서 뒷바라지 허얄 거 아니냐니요. 그게 자식 담임 선생님한테 허실 말씀이래요? 애들이 뭐래는지 알어요? 의붓아버지 아니냐고 그려요.”

“아 이녀르 가시내가 저녁이 못 먹을 걸 처먹었는가. 어디서 말대꾸를 또박또박허고 지랄이여, 지랄이? 한번 다 봐라. 능바우서 어디 가시내를 고등핵교 갈친 집이 있는가? 어? 정신머리 똑바로 처박힌 년이믄 생각을 히얄거 아녀. 아들이 인자 내년이믄 중학생이 되는디, 큰딸이 되야가꼬 착실히 돈 벌어서 동생 건사헐 생각은 못허고. 큰 아덜을 못 갈쳤은 게 작은 아들놈이라도 갈치얄 거 아니여?”

“참, 아버지 대단허시네요. 대단허셔요. 차라리 낳지나 말지.”

언니가 울면서 마당 밖으로 사라졌다. 쫓아 나가 더 때릴 줄 알았는데 웬일인지 아버지는 힘없이 방바닥에 주저앉아 찬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더 이상 욕도 하지 않았고, 물건을 던지지도 않았다. 어둠 속에서는 한 번씩 가느다란 흐느낌이 가을 풀벌레 울음에 섞여 들었다. 깜깜하면 혼자 변소도 못 가는 언니가 손전등도 없이 풀숲에서 울었다. 부엌에서는 엄마가 반질반질한 가마솥만 행주로 닦고 또 닦고, 또 닦았다.

언제부터 내린 것인지 모를 눈이 켜켜이 쌓여 세상이 온통 하얗게 빛났다. 날이 밝아도 눈송이들은 아주 가볍게 위에서 아래로, 아래로 하염없이 떨어졌다. 처마 끝엔 어제도 보았고 그제도 보았던 고드름에 오동통 살이 올랐다. 아무도 걷지 않은 새하얀 길을 엄마와 언니가 보따리를 들고 걸었다. 두 사람의 발걸음은 내리는 눈만큼이나 느렸다.

‘꿈인가. 꿈이구나. 그러니까 잠바도 입지 않고 마당에 서서 점처럼 작아지는 언니 뒷모습을 보고 있는데도 춥지가 않지.’

눈사태가 난 듯 내 안에서 무언가가 푹푹 무너져 내렸다. 요 며칠 언니는 마음을 단단히 먹은 듯 보였다. 언니는 결국 능바우를 떠났다. 잠깐 서울에 다니러 간 것이 아니라 계속, 그곳에서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살 거라는 사실은 저녁이 되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도 믿기지 않았다. 엄마는 언니를 서울에 데려다주고 사흘 만에 돌아왔다.

“봉제 공장? 미싱으로 옷 만드는 공장 말여?”

“그려, 옷 맹그는 공장.”

“언니가 무슨 미싱을 헐지 안다고 미싱 공장을 들으갔댜? 울 언니 공부허는 거 젤로 좋아허는디.”

“인자 배우야지. 시다로 들으갔응게 실밥도 따고 대리미질도 험서 차차 배우는 거랴.”

나는 군불 때는 엄마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계속 이것저것 캐물었다. 서울이란 곳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해서 언니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밖은 어둠이 짙어지나 싶더니 이내 논도 산도 하늘도 모두 한통속으로 까맣게 변했다. 나는 어둠을 한참 바라보다 갑자기 생각난 게 있어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 근디, 인자 언니 밤이 똥 매리믄 누가 같이 변소깐이 가 줄랑가?”

“…….”

“언니는 혼자서는 밤이 똥 싸러 못 댕기는디, 큰일 나버맀네잉.”

“긍게 말이다잉. 으찌 그르케 겁도 많은지…….”

바짝 마른 장작은 타닥타닥 박자까지 맞춰가면서 활활 타들어 갔다.

“동상, 있는가?”

정록이네 엄마가 양푼을 들고 부엌으로 들어왔다.

“예 성님, 다 저녁이 으찐 일이시래요?”

“자네 서울서 왔다 소리 들어가꼬, 은주는 잘 디리다 주고 왔는가?”

“예.”

“이거 아까 낮이 정록이가 고물 장시헌티 바꾼 모냥인디, 맛이나 보라고 가지왔네.”

아줌마가 내민 양푼에 든 것은 하얀 분이 묻은 엿가락이었다.

“아이고, 지는 서울까지 댕겨왔는디도 디릴 것이 암것도 없는디 빈손으로 받을랑게 염치가 없네요잉, 아주 잘 먹겄네요잉.”

“좌우당간, 동상 너무 속 끓이들 말드라고. 은주 갸가 보통 야무진 아간디. 착실허니 일 잘 배우고 이쁨받음서 지낼 거고만.”

아줌마가 돌아가고, 엄마는 한참 동안 양푼을 바라봤다.

“엄마, 나 엿 하나 먹으믄 안디야?”

“방이 갖고 들으가서 아버지 먼지 디리고 너도 애들허고 같이 먹어라.”

엄마가 내 손에 양푼을 들려줬다.

“엄마는? 엄마도 하나 먹어 봐아.”

나는 양푼을 엄마 앞으로 다시 내밀었다.

“나는 됐응게.”

엄마가 다시 양푼을 손으로 밀어냈다. 나는 방에 들어가 아버지랑 오빠, 동생에게 엿이 든 양푼을 내려놓았다.

“정록이네 아줌마가 가지오셨어요. 드세요.”

“나는 엿 안 좋아헌다. 느들이나 먹어라.”

아버지가 윗목으로 양푼을 밀어냈다. 언니가 서울로 가고 난 후 아버지는 내내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작은오빠랑 동생이 달려들어 엿을 하나씩 집어 들었다. 나는 엿 한 가락을 집어 들고 다시 부엌으로 갔다.

“아버지는 엿 안 좋아허신다는디, 자, 엄마도 쪼매 먹어 보랑게.”

나는 엿을 반으로 똑 부러뜨려 한 조각을 엄마에게 내밀었다.

“하이고, 이를 줄 알었으믄 보내기 전이 깨엿이나 사다 믹일걸. 그걸 하나 못 믹여서 보냈다. 나 같은 것도 에미라고.”

집에 도착할 때부터 부어 있던 엄마 눈에서 기어이 눈물이 툭 떨어졌다.

“언니 말이여?”

“그려, 작년 가실께…… 중산장날, 생일 선물인 게 먹고 싶은 거 있으믄 하나 골라봐라, 헌게 은주가 깨엿을 하나 집어 들더니, 아줌마 이거 하나에 얼마래요? 허고 물어. 하나에 300원이라고 헌게, 갸가 그 엿을…… 기양 내리놔. 그서 내가 왜 그냐, 허고 물어본 게, 엄마가 아침부터 종일 찬 시장 바닥에…… 앉어가꼬 장사혀서 하루에 얼마나 버는지 내가 뻔히 아는디 하나에 300원씩이나 허는 엿을 어뜨케 먹는디야, 허고는 휙 돌아서 학교로 뛰어 가버맀어.”

엄마는 한동안 말을 잇지 않았다. 나는 잠자코 기다렸다.

“생전 뭐 사달라고 헐지도 몰르던 아가 사달라고 헌 거 보믄 깨엿이 어지간히 먹고 싶었던 모냥인디…… 그거 하나를 못 믹이 보냈는디, 내가 이 엿을 어뜨케…… 목구녕으로 닝긴다냐…… 긍게 가지가 너나 먹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평소에 언니한테 깨엿이 먹고 싶다거나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니, 나는 언니도 먹고 싶은 것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소풍이나 수학여행을 가도 엄마가 군것질하라고 준 돈을 자기한테는 십 원도 안 쓰고 부모님 선물이나 동생들 과자 사는데 몽땅 다 써버리던 언니였다.

나는 토방에 서서 양손에 엿을 하나씩 들고 이걸 먹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다 하나를 입에 넣고 와자작 씹었다. 끈적끈적한 엿이 이에 달라붙어 조금씩 침이 고였다. 혀에 힘을 주고 떼어 보려고 했지만 엿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고 눈물만 질질 비어져 나왔다.

언니 없이 5학년이 되었다. 나는 진주를 데리고 학교에 다녔다. 동생은 뭐가 그리도 좋은지 한 살 많은 정진이랑 웃고 떠들면서 짧은 다리로 종종종 잘도 따라왔다. 언니 손을 잡고 처음 학교에 가던 날이 떠올랐다. 진주가 나보다 학교생활을 훨씬 더 잘하는 것 같았다.

집에 돌아오니 마당에 파란색 트럭이 서 있었다. 가게가 없는 능바우에 일 년에 한두 번 나타나는 만물상 아저씨였다. 이장 아저씨의 방송 소리를 듣고 우리 집 마당에 모인 동네 사람들은 라면이나 국수, 설탕, 밀가루 같은 것들을 사서 지게에 지고 돌아갔다. 우리는 어른들 뒤에 서서 부모님이 라면을 얼마나 사는지 눈여겨보았다. 어른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라면과 국수를 꼭 한 상자씩만 샀다. 설탕과 밀가루도 한 부대씩이었다. 어른들은 정말 준비성이 없었다. 아저씨가 또 언제 올지 모르니 라면처럼 맛있는 것은 많이씩 사 두면 참 좋을 텐데.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어른들 때문에 애가 탔다.

저녁 메뉴는 라면이었다. 나는 생일날 엄마가 닭을 잡아 삶아 주는 것보다도 라면이 훨씬 더 좋았다. 라면을 옷장 가득가득 넣어놓고 사는 꿈까지 꾼 적이 있었다. 부엌에 앉아 라면 끓이는 걸 구경했다. 양은솥에 물을 반쯤이나 채운 걸 보니 저녁에는 라면을 배불리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이 끓기 시작하자 엄마가 상자에서 라면을 꺼냈다. 두 봉지였다.

“엄마, 물은 이르케 많이 부섰는디 왜 라면은 두 개 뿐이여?”

“국수도 느야지.”

“엄마, 오늘 한 번만 국수 안 넣고 라면만 끓이믄 안디야? 어? 나는 국수 안 넣고 끓인 라면이 허빼 맛있단 말이여.”

“맛있다고 막 한번이 다 먹으믄 쓰가니. 라면은 비싼 게 애끼 먹으야지.”

엄마는 국수와 라면, 스프를 넣고는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고춧가루를 풀었다. 마지막 남은 희망은 그릇에 옮겨 담을 때 반듯반듯한 면보다 구불거리는 면이 내 그릇에 최대한 많이 담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라면을 골라 아버지와 오빠 그릇을 먼저 채웠다. 나는 이다음에 죽어서 저승에 가거든 삼신할머니를 찾아 단단히 따져 물을 생각이었다. 무슨 억하심정으로 나를 여자로 점지했는지 말이다.

“엄마도 여잠서 맨날 왜 남자만 먼지 챙긴댜?”

“그것이사 남자들이 뱃골이 큰 게, 더 많이 먹어야 힘을 써서 농사 일을 헐 것 아니다냐. 그리도 스프 국물은 다 똑같이 들으간 게 니야도 맛날 것이여. 저녁 먹거들랑 설탕물 그득 타 줄팅게 잔소리 말고 먹기나 혀.”

엄마는 내 그릇과 동생 그릇에 남은 면을 다 담고, 엄마 그릇에는 국물만 담아 찬밥을 말았다. 엄마 말대로 라면보다 국수 면발이 더 많은 내 몫의 저녁도 맛은 좋았다. 게다가 저녁상을 물린 엄마가 큰 양푼에 설탕물을 만들어 줘 진주랑 실컷 마셨다.

동네에 전화를 설치하고 냉장고를 들이는 집들이 늘었다. 우리 집도 냉장고와 전화기가 생기고 부엌 한쪽에는 가스레인지까지 설치됐다. 주소처럼 집마다 서로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전화번호가 정해졌다. 우리는 한동안 서로의 전화번호를 외웠다. 다른 집 전화번호를 거의 다 외웠지만 직접 전화를 거는 일은 없었다. 전화를 거는 것도 받는 것도 돈이 들어간다고 했다. 언니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었지만 서울로 거는 전화 요금은 엄청나게 비싸다고 해 꿈도 못 꿨다. 아버지는 몰래 전화를 써도 전화국에 다 알아볼 수가 있다고 했다. 만약 그러다 걸리는 날엔 중학교도 안 보내고 미싱 공장에 취직시킬 거라고 겁을 줬다.

가스레인지는 땔감이 들지 않아 좋았지만 호스로 연결된 가스통은 가끔 바꿔 줘야 했다. 엄마는 가스가 떨어져도 곧바로 가스를 주문하지 않았다. 나무로 불을 때 국을 끓이다가 동네에 가스 떨어진 집이 많아지면 아줌마들과 함께 가스배달을 시켰다. 가스배달 차는 주로 새벽 시간에 동네에 나타났다. 엄마들의 부탁 때문이었다. 가스 아저씨는 집마다 가스통을 바꿔 달아주고는 우리 집 마당에 차를 세운 다음 경적을 여러 번 울렸다. 그러면 아이들은 밥을 먹다가도 수저를 내팽개치고 부리나케 달려와 가스통이 있는 용달차 짐칸에 올라 가방을 엉덩이 밑에 깔았다. 아저씨보다 우리 집에 먼저 도착해 마루에 앉아 있는 애들이 태반이었다. 아저씨가 바빠서 한없이 기다릴 수는 없었다.

아이들이 얼추 올라타면 아저씨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차가 출발하려는 순간 경호 오빠랑 동생 경민이가 전력 질주해 움직이는 차를 붙잡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손을 내밀어 두 사람을 끌어 올렸다. 차 위에서 얼굴에 맞는 바람이 시원했다. 걸으면 한 시간도 더 지나야 나타나던 학교가 차를 타고 가면 금방 모습을 드러냈다. 오래오래 차를 타고 싶었던 우리는 아쉬움을 달래며 차에서 내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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