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학/ 김솔 지음

[현대경제신문 안효경 기자] 금고 제작자의 삶을 살다 환갑을 앞두고 뇌졸중을 앓게 되며 편마비가 온 남자는 마비된 한쪽 몸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권태와 회환에 빠질 것이라 예감한다.

죽음의 그림자를 품고 살게 된 남자는 마비된 몸과 온전한 몸으로 자아를 나누고, 마비된 쪽을 ‘너’(혹은 ‘쉥거’)라 지칭한 후, 그 안에 회환과 무력을 파묻기로 마음먹는다. 

 

온전한 쪽만을 ‘나’라 여기고, 그 안에서 자기에게만 유효한 시간을 살아가기로 마음먹는다.

밝혀지지 않은 병의 원인이 몸속에 숨어 있다면 밝혀지지 않은 치료 방법 또한 몸속에 담겨 있을 것이라 여긴 남자는 매일 같은 시간에 하천을 따라 걷기로 결심한다.

매일 만나는 하천은 뇌졸중 환자의 시간처럼 느리게 흐르는 듯 보이지만, 고요한 그곳은 사실 군부 독재 시절 개발로 사라지고 인공 하천으로 거듭난, 뒤틀려진 욕망이 자리한 곳이다.

남자는 산책을 하며 불륜을 저지르는 아내, 과거 자신이 저질렀던 살인과 미수에 그친 이야기 등을 떠올리며 자신을 둘러싼 욕망의 본질과 속성을 파헤치려 하지만 그 어떤 것에도 명쾌한 답을 찾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 죽은 ‘너’와 살아 있는 ‘나’는 ‘우리’가 되고, 하천은 행간이 되고, 이야기는 물을 사이에 둔 길 위의 모든 것이 되며 영겁과도 같은 천변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하천을 따라 산책하는 주인공과 함께 소설이 던지는 화두를 함께 풀어가며 존재와 존재, 의식과 의식, 기억과 기억 사이에 드러나지 않는 틈새를 들여다보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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