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열음 작가

2024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 장편소설 대상 수상작 '민주의 방(한열음 작가)'을 매주 연재합니다. 단행본은 국내 대형서점 및 인터넷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2024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 장편소설 대상 수상작] 민주의 방

10회. 읍내리 방 한 칸

중산 버스터미널에서 서문약국을 끼고 쭉 따라가다 태권도장 뒷길로 접어들어 골목 끝까지 걸어가면 굽이굽이 담벼락 깊숙이 숨어 있다가 나타나는 파란 대문. 그 집 뒤로는 층지지 않은 논들이 중산고등학교 너머까지 펼쳐졌다.

녹슬어 군데군데 칠이 벗겨진 파란 대문 위로 둥그런 지지대를 따라 말라비틀어진 장미 넝쿨이 볼썽사납게 휘감겨 있었다. 대문 바로 안쪽으로는 화장실이 남녀 구분해 두 칸으로 나뉘었고, 마당인가 싶어 들어서면 가운데 주인집을 중심으로 길이 갈렸다. 벽을 따라 방문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방의 크기를 가늠할 만했다. 주인집 바로 옆으로 수돗가가 보였고 그 뒤로 보이는 건 목욕탕이었다. 목욕탕 안에는 커다란 갈색 고무통이 바닥에 덩그러니 놓였을 뿐 다른 시설은 보이지 않았다. 목욕탕 수도꼭지를 돌려보았다. 찬물만 콸콸 쏟아졌다.

좁은 시멘트 길을 따라 돌고 돌아 맨 끝 방이 바로 오빠랑 내가 지낼 방이었다. 방 앞으로는 텅 빈 텃밭이었고, 그 위로 빨랫줄이 가로질렀다. 우리 방의 벽은 슬레이트로 대충 막아 놓았는데 군데군데 깨져 구멍이 나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려고 눈을 가까이 댔다. 어둠만 보였다. 우글거리는 양철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부엌은 흙바닥이었다. 연탄 화덕 옆으로 새까만 연탄이 가지런해서 보기 좋았다. 능바우는 배달이 안 되어 써보지 못했던 연탄이었다.

부엌 한쪽에 전기밥솥과 전기냄비가 어디서 주워 온 것 같은 나무 탁자 위에 놓였고, 연탄 화덕 맞은편 끝에는 작게나마 찬장이 서 있는 꼴이 터줏대감이라도 되어 보였다. 엄마는 이미 우리 남매가 기본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마쳐 놓았다. 기대를 품고 방문을 열어 보았다. 방은 부엌보다 작았다.

“엄마, 방이 너무 코딱지만 헌 거 아니여?”

“그런 말 허덜 말어. 그리도 이 방이 일 년이 쌀 한 가마여. 언니도 오빠도 여태 다 걸어서 버스 타고 핵교 댕겼는디 너는 첨부터 자취 시키주는 거잉게. 아주 호강이 겨워 오강이다 똥을 쌀 판이여.”

1년 방값이 버스비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란 걸 모르지 않았다.

“아무리 그리도 오빠랑 둘이 둔너 부리믄 방이 꽉 차겄는디?”

“아, 그믄 둘이 둔눌 수 있으믄 되얐지. 멋 헌다고 널른 방이 필요허가니? 방이서 강강술래라도 헐라고 근다냐?”

애초에 자취는 꿈도 꾸지 않았다. 아침마다 엄마랑 오빠를 따라 달음박질할 생각에 답답하긴 했다. 능바우 아이들은 하나같이 다 육상 선수였지만 유독 나는 몸이 약해 달리기도 못 했다. 그런데 고맙게도 이렇게 읍내리에 떡하니 방을 얻어주고 살림살이까지 장만해 주었으니 능바우에서는 그야말로 선택받은 고고한 족속이 되어 버린 셈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오빠랑 같이 쓰기엔 방이 너무 작았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형제들이 같이 방을 쓰긴 했지만 둘이서만 방을 쓴 적은 없어서 그랬는지 도통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작은오빠랑 두 살 터울이 아니라 세 살 터울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래저래 삼신할머니는 나를 점지할 때 내 생각은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만큼도 안 했나 보았다.

삼월 새벽바람은 읍내리도 능바우 못지않게 차가웠다. 함지에 쌀을 담아 수돗가에 가면 사람들이 눈곱도 떼지 않은 얼굴로 쌀을 씻느라 부산을 떨었다. 무, 콩나물, 감자 등 씻는 재료들만 보아도 그 집에서 뭘 먹고 사는지 훤히 알만했다. 새벽 수돗가에서 나는 애기로 통했다.

“하따 저 애기 아침마다 즈그 오래비 밥혀 바치느라고 욕보는구만. 아직 솔찮이 애긴디.”

“느그 오래비는 얼굴도 허여멀건 헌것이 똑 기생 오래비마냥 생깄드라. 가시내들이 좋다고들 쫓아 댕기겄드만.”

아줌마들이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는 동안 나는 말없이 쌀을 씻어 방으로 돌아왔다. 반찬은 엄마가 장날 가져다준 김치와 어제 먹다 남은 콩나물국이 전부였다. 도시락 반찬도 이변이 없는 한 김치였다.

아침밥을 먹고 내가 설거지하는 동안 오빠가 먼저 옷을 갈아입고 학교로 갔고 그 뒤에 내가 빈방에서 혼자 옷을 갈아입는 규칙이 생겨났다. 앉은뱅이책상은 하나밖에 없었지만 오빠는 웬만해서는 책을 보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내 차지가 되었다.

반 아이들 이름을 익히고 읍내리보다 더 낯선 자취생활에 적응하느라 삼월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월말이 되어 처음으로 월례고사를 치르게 되었다. 나는 영희가 줄도 없는 갱지 연습장을 펼치고 교과서에 나와 있는 내용을 새까맣게 써가며 공부하는 것을 신기한 눈으로 구경했다. 영희뿐만 아니라 많은 아이가 시험을 위해 따로 공부를 했다. 방해되었는지 영희가 나를 째려보았다.

“너는 시험공부 안 해?”

영희는 사투리를 거의 쓰지 않았다. 읍내리에 있는 국민학교를 나온 아이들은 사투리를 거의 쓰지 않았다.

“시험공부?”

“응, 시험공부.”

“시험공부를 왜 따로 허는디?”

“그게 무슨 소리야?”

“아니, 수업 시간에 배운 거로 시험을 치는 거 아녀?”

“그럼 너는 수업 시간에 배운 걸 다 기억해? 아무리 그래도 시험이 얼마나 어렵게 나올지 모르니까 따로 공부를 해야지.”

시험공부를 따로 해야 한다는 말은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다. 작년까지만 해도 시험이 있다고 해서 따로 공부하는 애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수업 듣고, 숙제하고, 다달학습 풀고, 내가 좋아하는 산수 문제집 푸는 게 전부였다. 그래도 시험에 나온 문제는 웬만하면 다 맞출 수 있었다. 도대체 수업을 얼마나 엉터리로 들었기에 그걸 다시 저렇게 공부하는 걸까.

나는 국어 교과서 페이지를 넘기면서 재미날 것 같은 내용을 골라 읽었다. 공부보다는 중간중간에 나오는 소설이나 수필을 읽는 것이 훨씬 가치 있는 일 같았다. 중학교에는 도서관도 없어 읽을 책이라곤 또다시 교과서뿐이었다. 중학교는 급식도 안 하고 도서관도 없고,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시험이 끝나고 성적표가 나왔다. 낯선 등수가 내 성적표에 찍혀 있었다. 내 거라고 믿어지지 않았다. 영희가 쌤통이라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영희는 반에서 2등을 했다. 집에 가는 길에 큰맘 먹고 용돈을 헐어 연습장을 샀다.

‘그까짓 시험공부, 을매든지 혀 줄라느만.’

파란 대문 위 장미 넝쿨이 초록 잎으로 뒤덮였다. 무성한 잎들은 쏟아지는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 사이로 보이는 검붉은 꽃봉오리가 야무졌다. 내 방이 저 뒤편 끝에 어두운 방이라는 생각을 잠시 잊기만 하면 꽤 근사한 집에 살고 있다는 우쭐함이 대문을 드나들 때마다 들곤 했다.

1학기 기말고사도 끝나고 좁아터진 자취방이 더위에 흐물흐물 녹아들 것만 같을 때쯤 방학이 돌아왔다. 장려금까지 받아 가며 작년부터 시작한 담배 농사 때문에 오빠와 나는 능바우 농사꾼이 되어야 했다. 읍내리 친구들처럼 방학 동안 보충수업을 듣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신청서를 제대로 읽지도 않고 네 등분으로 잘라 화장실 선반에 올려놓았다.

일찌감치 일어나 아침을 먹고 언덕진 안티밭으로 갔다. 왜 그 밭 이름이 안티가 되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나에게 그 밭은 처음부터 안티였다. 골돔이 골돔이고 능바우가 능바우고 내가 여자인 것처럼. 남쪽 하늘을 보고 경사진 덕에 볕이 잘 들어 어떤 농작물을 심어도 결과가 좋았다.

집안의 기대를 잔뜩 품은 담배 모종은 안티밭에서 햇빛을 오롯이 받고 내 몸뚱이만 한 잎들을 무섭게 길러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커다란 잎을 우산처럼 머리 위에 쓰고 돌아다니던 개구리 왕눈이가 담뱃잎 아래 어디쯤 숨어 있다가 금방이라도 피리를 불어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런 환상은 밭고랑에 쭈그려 앉아 담뱃잎을 열댓 장만 따고 나면 담배 연기처럼 사라졌다. 잎에서 나온 진액으로 손은 새까맣게 변했고 커다란 잎은 무거웠다. 냄새는 개구리 왕눈이가 아니라 심술궂은 투투가 와도 질식해서 죽을 만큼 고약했다. 그뿐인가. 안티밭에 내리쬐는 한여름 태양은 나를 태워 죽일 작정인 게 틀림없었다.

누렇게 변한 아래쪽 잎들을 따서 비닐하우스 앞 그늘로 옮겨 줄로 엮었다. 한 줄이 다 엮어지면 비닐하우스에 빨랫줄처럼 걸어 말려야 했다. 담뱃잎을 그늘에 부려놓고 엮는 작업을 하는데 먹구름이 무겁게 몰려오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소나기가 쏟아질 기세였다. 굳이 아버지가 말하지 않아도 우리는 모두 정신없이 담뱃잎을 들어 비닐하우스 안으로 옮겼다.

가을 공판에서 상등급을 받기 위해 담배 농사에 들여야 하는 정성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일단 딸 때부터 부러지지 않도록 커다란 잎을 아기 다루듯 해야 했고 엮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정한 방향으로 비스듬하게 엮어 공기가 잘 통해 썩지 않아야 하며 마르면서 우글거리거나 색이 얼룩지지 않도록 물기가 닿지 않게 단속해야 했다. 비 오는 날 비닐하우스 안에서 담배를 엮는 건 고역이었다. 이미 말라가고 있는 잎에서는 갈색 진액이 떨어져 바닥에 고여 지독한 내를 풍겼다. 더위에 습기까지 거드는 통에 비닐하우스 안에서 질식사라도 할 것만 같았다.

아버지를 따라 엮인 담뱃잎 꾸러미 한쪽을 들고 일어서다가 하루에도 두세 번씩 고꾸라졌다. 엄마가 빈혈에 좋다고 종종 닭을 고아 줬다. 하지만 죽은 짐승이 불쌍하게 나는 비닐하우스 안으로만 들어가면 나자빠졌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잘 마른 담뱃잎을 손으로 비벼 가루를 낸 다음 종이에 말아 피웠다.

“쟈가 션찮어서 담배 농사는 올히만 짓고는 말으야 쓰겄다. 똑 즈그어매 택여가꼬…….”

가을 공판까지는 까마득하게 멀었지만 그래도 내년에는 이 짓을 다시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빈혈로 쓰러진 게 헛일은 아닌 듯하다.

담뱃잎은 매일 따내도 부지런히 새순을 내밀었다. 밤사이 마술이라도 부리는지 하루가 다르게 잎을 키워냈다. 커다란 담뱃잎은 가끔 내 꿈속까지 찾아왔다. 담뱃잎은 길쭉하게 제 몸을 늘리는가 싶더니 잎의 끝이 갈라져 손가락으로 변했다. 그것은 단번에 내 목을 움켜잡고 비틀어 댔다. 숨이 막히는데도 담배 냄새가 진동했다. 다행인 것은 다음 날 죽어 있는 것이 내가 아니라 밤사이 몰래 비닐하우스로 기어들어 온 들짐승이라는 사실이었다. 담뱃진에 질식해 죽어 나가는 동물의 종류는 다양했다. 다람쥐, 살쾡이, 들쥐까지. 아버지가 사체를 집어 숲속으로 던질 때마다 저 멀리, 뻣뻣하게 날아가는 그것이 내 몸뚱이인 것만 같았다. 온몸이 경직된 채로 어둡고 차가운 숲속에서 내내 썩어갈 것을 생각하자 소름이 돋았다.

담배 냄새로 찌든 방학이 다 끝나서야 오빠와 나는 능바우를 벗어났다.

“오빠도 인자 3학년인디 공부를 쪼매 허야 쓰는 거 아니여? 고입 연합고사도 을매 안 남었는디.”

“공부는 너나 실컷 혀라. 나는 공부는 아닝게.”

내심 아버지는 벌써부터 농고나 공고를 가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그럴 때마다 오빠는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여러 소리 말고, 체육대회 날 도시락 반찬으로 쏘세지나 싸줘. 그날도 추잡시럽게 김치 싸지 말고.”

“나도 그릴라고 혔어. 그려서 지난주부텀 콩나물이고 두부고 하나도 안 사 먹고 애낀 거여. 나도 그만헌 눈치는 있고만.”

오빠는 결국 아버지의 매타작을 견뎌내고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모르긴 몰라도 오빠는 매 맞는 것보다 고등학교 공부하는 것이 더 싫은 눈치였다. 나는 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오빠도, 가지 않겠다는 오빠에게 학교 가라고 윽박지르는 아버지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럴 거면 그렇게 공부하고 싶어 하던 언니나 상업고등학교라도 보내줄 일이지.

다들 두꺼운 고입 시험 기출문제집을 풀고 열을 내며 공부하는 주말에도 오빠는 능바우로 들어가 아버지를 도와 추수를 했다. 해 질 녘이면 대나무 낚싯대를 들고 능바우 방죽 수풀에 앉아 살찐 붕어를 낚아 올렸다. 세상은 온통 수수께끼투성이였다. 나는 어서어서 가을이 가고 겨울이 지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럼 혼자 읍내리 자취방을 차지하게 될 테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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