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열음 작가

2024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 장편소설 대상 수상작 '민주의 방(한열음 작가)'을 매주 연재합니다. 단행본은 국내 대형서점 및 인터넷서점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2024 현대경제신문 신춘문예 장편소설 대상 수상작] 민주의 방

11회. 나의 방

전구를 눈에 담았다. 유리알이 다소곳하게 감싸고 있는 필라멘트가 자취방을 오롯이 혼자 다 차지하고 누운 나랑 오랜 친구라도 되는 것 같았다. 웃음이 터졌다. 처음이었다. 내 방을 가져보는 게. 드러누워 몸을 굴리면 채 두 바퀴도 못 도는, 세상이 나에게 내어 준, 나의 방 한 칸. 환장하게 좋았다. 웃으면서 다시 벽을 짚고 빙그르르 돌아 책상에 부딪히고 또 굴러서 벽에 닿기를 반복했다. 좁은 방이었지만 몸에 닿는 게 오빠가 아니라는 사실만으로도 감개무량이었다. 며칠 남지 않은 개학까지 내 방에서 빈둥거렸다. 밥해라, 청소해라, 빨래해라 보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니. 이제 오롯이 나를 위해서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랫배가 기분 나쁘게 가라앉아 잠을 설치다가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학교 갈 시간은 아직 멀었다. 습관처럼 일어나 문을 열고 나섰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애매한 새벽이었다. 장날이니 어쩌면 아침에 엄마가 자취방에 들를지도 몰랐다. 화장실에 가려고 문을 나섰다. 찬바람을 맞아 그런지 아랫배가 더 아팠다. 배탈이 난 것 같지는 않았다. 낯설지만 당황하지는 않았다. 나는 서둘러 방으로 들어갔다. 예상대로 속옷에 피가 묻어 있었다. 반 친구들은 대부분 다 생리를 시작했는데 나만 소식이 없어서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예상했다. 다만, 가진 돈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아 생리대를 살 수 없다는 게 문제였다.

‘혹시 엄마가 오늘 장에 안 오면 어쩌지, 학교에는 어떻게 가지.’

걱정 때문에 아침 먹을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옆방 유치원 선생님한테 부탁해 볼까. 선생님이 출근하는지 방문 잠그는 소리가 여느 때보다 크게 들렸다. 자물쇠가 옆방이 아니라 내가 속한 세상에 채워지는 것만 같았다. 초조했다.

‘옆방 선생님을 붙잡을걸. 결석해야 하나, 물건 해온 강아지가 많아 오늘은 엄마가 자취방에 들르지도 않고 곧장 장터로 가버렸나, 이럴 게 아니라 시장에라도 가봐야 하나.’

이런저런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익숙한 발소리가 다가왔다. 할렐루야!

“엄마!”

“왜 그냐? 뭔 일이여? 가시내가 왜 아침 댓바람부텀 울고 지랄이여?”

반가운 나머지 내가 울고 있는지도 몰랐다. 엄마는 내 얘기를 듣고는 가방에서 엄마 생리대를 하나 꺼내서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방법이라면 학교에서도 여러 번 들어 이미 알고 있었다.

엄마를 따라 서문약국으로 갔다. 엄마는 생리대를 두 봉지 사서 하나를 내 가방에 넣어 주면서 서너 시간마다 한 번씩 바꿔 줘야 한다고 또 당부했다. 나머지는 자취방 옷장 안에 넣어둔다고 했다. 학교로 걸어가는 내내 기저귀 찬 아기들처럼 엉덩이에 티가 날까, 신경 쓰느라 자꾸만 걸음이 꼬였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기가 된 것 같았다. 교실에 앉아 있으니 잊었던 아랫배 통증이 싸하게 다시 올라왔다. 수업 내용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는 누가 가방에 슬그머니 손을 넣기만 해도 쟤도 생리대 꺼내나 하고 손만 쳐다보게 되었다. 한 달에 일주일이나 이런 생활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억울했다. 도대체 이런 건 어디 가서 따져 물어야 하나. 창밖의 하늘을 내다보았지만 구름 한 점 없이 맑아 부아만 치밀었다.

원래부터 모자란 핀데 한 달에 한 번 쏟아내기까지 해서 그런지 내 빈혈은 나아지지 않았다. 합창 연습, 운동장 조회, 체육 시간, 그 외 앉았다 일어나야 하는 순간들이 공포로 다가왔다. 조회 시간에 몇 번 쓰러진 뒤로 학교에서 내 별명은 ‘빈혈’이 되었다. 창의성은 고사하고 성의조차 없이 지은 별명이라니.

아침에 화장실에서 쓰러진 채 한참 동안 정신을 못 차렸다. 몸을 추스르고 보니 뒤통수가 욱신거렸다. 손으로 더듬어 보니 볼록한 혹이 잡혔다. 화장실 모퉁이로 쓰러지면서 머리를 찧었나 보다. 변소에서 넘어지면 명이 다한 거라던데……. 만회하려면 떡을 해 동네방네 돌려야 한다고 들었는데 그럴 돈이 있을 리 만무했다. 시름시름 앓다가 스무 살도 안 돼 죽을 생각을 하니 설움이 북받쳤다. 실컷 울 수 있도록 혼자 방을 쓴다는 사실만이 위로가 될 뿐. 내게 남은 날이 얼마나 될까를 가늠하다 운동장에서 또 쓰러졌다. 정신이 들자마자 드라마 속 비련의 여주인공 같은 표정을 지으려고 애썼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내 앞에 서 있던 두 친구가 나를 양호실에 데려갈 사람을 정하느라 가위바위보를 했다. 저런 철부지들 같으니라고.

한순간 어른이 되어 버린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든 건 여름방학이 돌아온다는 사실이었다.

‘어차피 얼마 살지도 못하고 죽을 텐데, 내가 꼭 밭에 가서 담뱃잎을 따야 하는 걸까, 이대로 어디론가 사라져 죽어버리면 누군가가 울어주기는 할까. 왜 사람은 태어나고 무언가를 먹고 돈을 쓰면서 살아야 하는 걸까. 나는 왜 여자로 태어난 걸까. 나는 왜 여름방학에 보충수업도 못 듣고 담뱃잎을 따야 하는 이런 가난한 집구석에 태어난 걸까. 작은오빠마저 돈 벌겠다고 서울로 내빼버리고, 나도 서울이나 갈까. 어차피 죽을 거면 그냥 오늘 죽는 게 낫지 않을까. 가만있어 보자, 어떻게 죽지? 아, 방죽이 있었지. 능바우 들어가는 길에 그냥 방죽에 빠져 죽을까.’

작년에 방죽에서 보았던 물뱀이 떠올랐다. 너무 징그럽고 무서웠다.

‘아, 나는 왜 아직도 죽는 게 무서운 걸까. 어른이 덜돼서 그런가. 내가 진짜 어른이 될 때까지 살 수는 있을까. 진짜 어른이란 뭘까.’

이런 생각을 계속하면서 능바우로 걸어 들어갔다.

얼굴이 못쓰게 됐다고 엄마가 해준 닭백숙은 맛이 기가 막혔다. 오빠의 상경으로 집안에 남자는 아버지만 남은 덕에 나에게 큼지막한 다리 하나가 배정되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 자살을 계획한 나 자신을 배신하는 행위였지만, 내 의지와는 달리 젓가락이 연신 고기를 찢어 입에 욱여넣었다. 밤에는 마당의 멍석에 누워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죽어 하늘의 별이나 되자고 비장함을 품으려 애썼지만 좀처럼 서러운 마음이 다시 들지가 않았다. 죽음과 맞바꾼 닭 다리라니.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게 별인지 잠의 요정인지, 나는 빠른 속도로 정신이 몽롱해졌다.

방학 동안 여러 번 기회를 노렸지만 따야 할 담뱃잎이 너무 많아서 나는 죽지 못했다. 나까지 죽으면 불쌍한 동생은 어쩌란 말인가. 사담 후세인이 쿠웨이트를 침공해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서울 간 언니가 피난 보따리같이 커다란 짐을 들고 내려왔다. 역시나 큰오빠는 올해도 휴가를 고향으로 오지는 않았다. 큰오빠가 그러니 당연히 작은오빠도 그래야 하는 줄 아는지 언니는 혼자였다. 언니는 하얀 얼굴에 땀범벅이 되어 선물 꾸러미를 잔뜩 보듬고 마을로 들어섰다. 역시 죽지 않길 잘했지. 언니는 공장에서 만든 청바지와 청남방을 식구 수 대로 잔뜩 들고 왔다. 올해 스무 살이 된 언니는 이제 공장에서 제법 고참 축에 든다고 했다. 밑에 시다가 줄줄이 달렸다고. 언니가 높은 사람이 되어서 이렇게 식구들 선물도 다 가져올 수 있었나 보았다. 한창 유행 중인, 무릎까지 내려오는 청 반바지도 두 개나 들어 있었다. 나는 옷을 입어보고 선물 꾸러미 안의 머리띠까지 장착하고는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걸어보고 짝다리를 하고 허리에 손을 짚었다. 진주가 옆에서 따라 했다. 최신 유행하는 반바지를 입은 모습을 친구들에게 보여줄 생각에 빨리 방학이 끝났으면 싶었다.

한껏 들뜬 나와 달리 언니는 사흘 내리 잠만 잤다. 마치 서울에서는 잠 한숨 제대로 못 잔 사람처럼 정말로 자고, 자고, 또 잤다. 잠만 자는데도 매일 코피를 쏟았다. 자다 일어나 오줌을 싸는 대신 코피를 빼내야 하는 사람 같았다.

“언니, 서울서는 잠이 잘 안 와서 통 못 잔 거여? 어찌 그르케 하루 좽일 잘 수가 있데잉?”

“잠이 안 오기는, 잘 시간이 없어 못 자는 거지.”

“어찌서 잘 시간이 없는디? 서울 시계라고 밤이는 더 후딱후딱 돌아가는 것도 아닐 거 아녀.”

“진짜 밤에만 시계가 정신없이 돌아가. 밤에 무리하게 돌다 지쳤는지 일할 때는 축축 늘어지고. 근데 밤에 야근한다고 타이밍 나눠준 거 먹고 나면 또 시곗바늘이 엄청 천천히 돌아가. 신기하지?”

“타이밍을 나눠준다고? 마술도 아니고 그런 게 다 있댜?”

“타이밍이라고 졸지 말라고 주는 알약 있어.”

“얼레, 참말로 별시런 약이 다 있고만. 그거 나도 있으믄 좋겄네. 시험공부헐 때 먹게.”

“아서라! 절대 그런 거 알 필요도, 먹을 필요도 없이 살아. 너는 창문도 못 여는 공장 말고 꼭 사무실에서 일해. 예쁜 블라우스에 치마 입고 빼딱 구두 신고.”

언니는 하품을 크게 하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다 말고 잠이 들었다. 서울에는 맛있는 음식도 많다는데 언니는 엄마 말마따나 꼬챙이처럼 말랐다. 엄마는 사흘 동안 닭 모가지를 두 마리나 비틀었다. 한 마리는 자주 쌍알을 낳는 토실토실한 암탉이었다. 아궁이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엄마는 ‘저것이 입이 짧어 큰일이여’라는 말을 한 번씩 내뱉었다. 그 말이 ‘내 새끼 불쌍히서 어찐다냐’라는 말이랑 같다는 걸 나도 모르지 않았다. 불 때는 엄마 옆에 앉아 있자니 덥고 매워서 자꾸만 눈으로 물이 새어 나왔다. 안에서 닭이 익는지 솥단지에서도 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언니가 와 있던 시간은 꿈같이 짧게 지나갔다. 여전히 뽀얀 얼굴로 서울로 돌아간 언니와는 달리 개학을 앞둔 내 얼굴은 담배 덕장 안에서 말라가는 담뱃잎처럼 짙은 갈색이었다. 담뱃잎으로 치자면 공판장에서 넉넉히 최고등급을 받고도 남을 만했다. 살이 타지 않도록 일할 때마다 소매가 긴 엄마 옷과 챙이 넓은 모자를 착용했는데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농사꾼 아낙네가 따로 없었다. 아버지는 내년에 담배 농사를 절대 짓지 않겠다는 말과 함께 공판이 끝나면 카세트 플레이어를 사주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니 주말마다 와서 공판 때까지 일을 잘 도와야 한다는 당부가 따라붙었다. 나는 이번에도 소득 없이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저녁 시간이면 파란 대문 집은 앞방 뒷방 할 것 없이 텔레비전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능바우나 읍내나 가난한 아비들은 술이 주식인 양 매일 같이 마셔댔다. 아마도 술값으로 돈을 다 써버려 영영 부자가 되지 못하는 거겠지. 술기운이 절정에 달한 그들은 몇 개 없는 집안 살림을 집어 던지다가 더 손에 잡히는 게 없으면 눈앞의 제 각시 머리끄덩이를 잡아 패대기쳤다. 당하는 아낙들도 이때다 싶은지 꼭꼭 눌러 담은 응어리를 목청껏 풀어 재끼는 통에 파란 대문 안은 하루가 멀다고 아수라장이었다.

찬바람이 들기 전에 장날 엄마가 와서 부엌 가득 연탄을 들였다. 순옥이 엄마의 부탁으로 순옥이의 부엌에도 꼭 그만큼의 연탄이 쌓였다. 순옥이 엄마는 나만 믿는다며 굳이 나와 같은 자췻집에, 그것도 내 방보다 두 배나 비싼 방에 순옥이를 이사시켰다.

연탄을 들인 이튿날, 큰 방에 새로운 가족이 이사를 왔다. 아줌마는 머리숱이 많았고 하얀 얼굴에 몸집이 컸다. 아저씨보다 키가 한 뼘은 더 높았다. 틀어 올린 곱슬머리에서 머리핀의 보석이 반짝거렸다. 아직 학교에도 안 들어갔을 어린 여자아이 둘이 짐을 나르는 동안 내 방 앞 텃밭에서 소리를 지르며 뛰놀았다. 아이들의 동그란 눈이 유난히 예뻤다.

순옥이와 나는 큰 방에 들어오는 그 가족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췻집에서 유일하게 부엌에 개별 수도가 딸린 방이었다. 아이들이 입고 있는 공단 원피스가 겨울 햇살을 받아 우아한 빛을 자아냈다. 며칠 지켜본 결과 아저씨는 새벽같이 출근했고, 아줌마는 뒤늦게 일하러 나가는 것 같았다. 새벽녘 공동 수돗가로 나와 아침을 준비하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 집에서 뭘 먹고 사는지 알 수 없었다. 음식 냄새는 열 가구가 넘는 방에서 한꺼번에 풍겨와 내 방 앞 텃밭에서 마구 섞였다. 냄새로도 그 집 메뉴를 짐작하기는 어려웠다. 가장 비싼 방을 세내어 살고 있으니 가장 맛있는 음식을 해 먹을 거라고 예상할 뿐이었다.

성난 바람이 텃밭을 맴돌았다. 숨을 내쉬면 입김이 허옇게 드러났다. 순옥이랑 나는 같이 번개탄으로 연탄에 불을 붙였다. 양동이에 물을 받아와 연탄 화덕 위에 올려놓았다. 따듯한 물을 써야 할 정도로 날씨가 춥다는 것은 마을 밖 시냇가가 아닌 자췻집 공동 수돗가에서 빨래해도 된다는 신호였다. 물론 찡그린 주인아줌마 얼굴을 자주 봐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겨울이면 수도세를 더 내는데도 주인아줌마는 ‘뭐 벌써 수돗가에서 빨래하냐’고 야단이었다.

학교에 다녀오면 연탄불부터 확인했다. 그런데 부엌 구석에 쌓인 연탄 양이 확 줄어 보였다. 언뜻 봐도 열댓 장이 비었다. 연탄을 셌다. 그리고 순옥이 방에 가서 순옥이의 남은 연탄 수를 셌다. 차이가 컸다. 아침, 저녁으로 연탄을 가는 건 순옥이나 나나 같을 테니 남은 양도 얼추 비슷해야 했다. 내가 돌아왔을 때 내 방의 자물쇠는 분명 잠겼었는데. 깨진 슬레이트 구멍을 통해 연탄이 나갈 리도 없었다.

아침에 한 번 더 연탄 수를 세어 두고 학교에 다녀왔다. 저녁에 보니 정확히 여섯 장이 비었다. 열쇠는 분명 내가 열고 들어왔는데. 나는 밖으로 나가 자물쇠를 살폈다. 고리가 붙은 자리가 지저분했다. 누군가 고리에 박힌 못을 뽑았다 다시 박은 흔적이 분명했다. 연탄은 내 방에서만 없어졌다. 순옥이 방으로 가 확인해 보았지만 어제 이후 순옥이가 쓴 두 장을 제외하고는 그대로였다. 잠금장치를 보았다. 내 방의 것과는 다르게 아주 튼튼해 보였다. 그때 큰 방사는 현애가 다가왔다.

“언니, 오늘은 빨래 안 혀? 내가 해주께.”

나는 현애네 방의 열린 문틈으로 얼른 부엌을 엿보았다. 연탄이 스무 장 가까이 쌓여 있었다.

“현애야, 니네 연탄 언제 산 거여?”

“몰라, 엄마가 돈 없다고 한 번에 안 사고 하루에 몇 장씩, 이렇게 사 왔어.”

“그럼 오늘도 사 왔다냐?”

“응, 어지께도 사 오고.”

의심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저렇게 큰 방을 얻어 사는 부잣집에서 중학생 연탄을, 그것도 젤 싸구려 방에 사는 학생 연탄을 훔쳐 가다니. 그 뒤로도 내 연탄은 두어 번 더 없어졌고, 큰 방 연탄은 그때마다 장수가 늘었다. 하지만 심증뿐이었다. 현애네 집에 어떻게 복수를 할까 고민하느라 며칠 골머리를 앓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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